2021-03-28 / Round 01: 바레인 그랑프리 - 올해는 어쩌면
탈것경주 잡담이 레이스 당일, 또는 그 다음날 올라오지 않았던 데에서 예상하실 수 있듯이 그간 몹시 바빴습니다. 농번기(?)를 마무리하고 적당히 한 숨 돌릴 수 있을 즈음일 줄 알았더니 이게 웬걸, 5월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바쁜 놀라운 일상(....이 시국에도 일감이 꾸준히 이어진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요). 사담은 이쯤 해 두고, 바레인 그랑프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전같았으면 늦어도 11월 셋째 주에는 시즌 마무리하고 FIA 시상식 겸 연말 잔치, 신차 공개, 프리시즌 테스팅, 이후 개막전까지 적어도 석 달 이상의 시간과 넉넉한 물리적 거리들이 있었을 텐데 지난해가 워낙 특이한 상황이어서였었는지 돌아서니 또 그 자리인 것만 같은 개막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키르 - 사키르 바깥쪽 - 야스 마리나 - 사키르에서 테스팅 - 그대로 사키르에서 개막전이라는 일정이어서요. 개막전이라면 역시 멜번의 알버트 파크에서 열려야 제격이지 않나 싶은(적어도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쭉 그랬다는 인상이기 때문에) 가운데 2021시즌 첫 그랑프리 주말을 맞이했습니다. 프리시즌테스팅과 개막전 간격이 짧았던 만큼 레드불 레이싱이 우위를 가져갈 것 같았고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되었네요. 기록지들 보며 계속하겠습니다.
예상대로 금요일에는 RBR과 메르세데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첫 세션을 마쳤습니다. 메르세데스는 리어가 좀 불안해 보이고, 더 봐야 알겠지만 금요일까지는 RBR 쪽이 달릴 때 더 안정적으로 보였습니다. 90분에서 60분으로 FP1, 2 시간이 줄어드니 팀들이 굉장히 바빠 보이더라고요. 느긋하게 관망해 가며 차 내보내기보다는 일단 돌려 보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전반적으론 '첫 세션의 뭐가 뭔지 모르겠는 즐거움' 이 있었습니다. 페라리가 지난해보단 나아진 것 같았던 한편, 맥라렌은 FP1 중간에 왜 엔진 커버를 열어보고 난리냐 싶었는데, 생각해 보면 열려면 금요일 오전에 여는 게 낫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그렇게 되면 곤란하니까요... 다니엘 리카도가 약간(?) 고생한 한편 란도 노리스는 비교적 준수한 기록을 낸 편입니다. 반면 알핀은 두 드라이버 모두 기대에 못 미치는 기록들이었어요. FP1에선 1위에서 15위까지 기록 차가 1초 미만이었다는 점이 긍정적입니다. 그만큼 팀 간 경쟁이 접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니까요. 뭐 FP2 시점까진 아직 아무도 퀄리파잉 페이스로 달려 본 것 같지 않았지만서도.
드라이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한 팀에 차가 두 대지 않습니까. 차량 식별을 위해 번호를 적어넣는 한편, 차에 붙여 놓는 온보드 캠 색을 달리 해서 - 요즘 기준으로 한 대는 까망, 한 대는 노랑 - 구별하기도 하는데요. 퍼스트 드라이버가 까망 캠을, 세컨드 드라이버가 노랑 캠을 가져가는 것이 관례입니다만 올해의 알파타우리는 피에르 가슬리가 노랑 캠을, 츠노다 유키가 까망 캠을 달았더라고요. 전자는 그랑프리 우승자고 후자는 루키인데 후자에게 까망 캠이 갔다는 것이 저는 의외였어요, 하지만 RBR계열 팀에서 그렇게 안/못 할 건 또 뭐냐 싶고... 뭐 베텔도 올해는 노랑 캠이니까요 이직해서 그런지...... 그건 그렇고, 저도 미하엘 슈마허를 메르세데스 시절로나마 기억하고 있어서인지 믹 슈마허 기록으로 리더보드에 뜨는 'MSC'를 보며 어딘가 아련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예전에 브루노 세나가 'SEN' 달고 있었을 때 아일톤 세나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런 마음이었을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고요.
한편, 올해 차에다 파랑색 계열을 쓰는 팀이 늘어서 - RBR, 알파타우리, 알핀, 윌리엄스 - 이 파랑들을 식별하는 것도 나름 일이 되었습니다. 라이브타이밍 앱에 색깔 막대기로 넣는 팀 식별 표지도 진녹색의 아스톤 마틴이 섞이면 혼란이 가중되고요. 3라운드까지 온 지금도 가끔씩 헷갈릴 때가 있어요... 팀들 눈치 좀 챙겨서 색 안 겹치게끔 해 주었으면.
나이트 레이스 특성상 퀄리파잉 전 FP3 세션은 좀 느슨하게 시작하는 경향이 있고 이번 바레인도 에외는 아니었습니다. 세션 시작 후 12분이 흐르도록 플라잉 랩이 없었어요. 15분쯤이 흐르고서야 드라이버 절반쯤이 나온 정도? RBR의 베르스타펜은 차를 휘두르는 느낌이 여전히 온보드에서 좀 있기는 한데, 작년보다는 확실히 안정적으로 보이더군요. 작년 메르세데스들의 매끄러움이 정말 굉장했던 것도 있지만요. 전반적으로 메르세데스가 지난해보다 고생을 좀 하긴 하는구나 싶은 세션이었습니다. 리더보드 저 아래에 챔피언십 여러 번 가져갔던 드라이버들 - 알론소와 베텔 - 이 있는 것 참 적응이 안 되기는 하데요. 기록들만 보면 무슨 멀티챔들이 Q2 가네 마네를 놓고 드잡이하게 생겼어서;
올해의 첫 퀄리파잉 세션 첫 기록은 믹 "MSC" 슈마허의 1분 33초 861, 소프트로 낸 기록이라니 올해 하스가 영 안 풀리긴 할 것 같더라고요... 팀들이 오프시즌 동안 얼마나 일을 했는지 판가름이 나는 순간이라면 순간인데. 베텔이 p18으로 Q2 진출 실패, 알론소는 일단 p7으로 통과했습니다. Q1 막판에 페라리의 사인스 차 엔진 문제가 잠깐 있었던 건 좀 불안했네요. Q1 p1-p15 격차는 1.154초. Q2에서는 메르세데스의 발테리 보타스와 루이스 해밀튼이 섹터 패스티스트를 주거니받거니 하며 기록을 깎아 나갔습니다. 페라리가 마침내 Q2 미디움 전략을 포기하면서(....지난해는 정말 좀 심했다고요) 리더보드 꼭대기에 두 드라이버들을 올렸고 그 기록차가 0.001초라는 흥미로운 결과도 나왔고요. Q2 p1-p10 격차는 0.615초, 그런데 p1-p4가 0.090초였으니 이쯤이면 재밌는 세션이었다는 증거가 될까요. :)
개막전답게 라이브타이밍 앱이 덜덜거렸고, Q3 초반에 벌어진 일이라 저는 몹시 긴장되었으며, 섹터2 기록으로 보아 메르세데스 리어가 작년보다 덜 잡힌 것 같다는 저의 짐작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 - 알파타우리의 가슬리가 p3 기록을 냈습니다. 체커드 플랙까지 3분 10초쯤을 남기고 다들 다시 나왔고 메르세데스의 해밀튼이 상당히 좋은 기록을 냈지만 베르스타펜이 섹터 2에서 좋은 기록을 내며 0.388초 차로 폴 포지션을 가져갑니다. 그러면서도 p2, p3 나란히 메르세데스가 가져갔으니 금요일에 그렇게 (세꼭지별치고) 헤매 놓고 퀄리파잉 세션에서는 (세꼭지별 기준에)그럭저럭 해 낸 걸 보면, 디펜딩 챔피언 팀다운 노하우가 있긴 한 모양입니다.
메르세데스가 가장 빠른 차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지다시피한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레이스가 더 흥미로웠던 부분이 있습니다. 베텔은 옐로 플랙 무시 페널티로 최후미 스타트. 포메이션 랩 도중에 RBR의 페레스 차에 문제가 잠깐 생기면서 포메이션 랩 한 번 더, 이것으로 57랩짜리 레이스가 56랩짜리 레이스로 바뀌었습니다.
스타트 직후 한 섹터 채 넘기기도 전에 하스의 마제핀이 배리어에 부딪혀서 리타이어, 옐로에 이어서 세이프티 카가 나왔네요. 생각외로 더 많이 혼란스러운 개막전 ... 그래도 L7/56 즈음부터 차간거리가 슬슬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첫 핏스톱들 가져간 이후 L21/56 즈음에선 중위권 엎치락뒤치락이 재미있었고요.
문제는 메르세데스인데, 보타스 두번째 핏스톱이 꼬여서 - 오른쪽 앞 휠 넛 문제였는지 타이어가 제때 빠지지 않았어요 - 시간 손해를 심하게 보았어요. 다시 순위 찾아갈 수 있는 드라이버이긴 하지만 사키르에서 핏스톱 꼬이면 너무 손해를 많이 본단 말이에요. 한편 알핀에서는 리어 브레이크 문제로 알론소가 리타이어. 아쉽게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리타이어 원인이 참....;
상위권에서 순위 변동이 일어나기엔 차간거리가 너무 벌어져 있었던 와중, 16랩 남긴 상황에 1-2위 인터벌이 8초대까지 좁혀졌습니다. 10랩 남은 상황에선 3.8초대까지로 더 줄었고요. 그래서 L52/56쯤 되면 메르세데스의 해밀튼이 RBR의 베르스타펜이라는 더 빠른 뒷차를 10랩쯤 더 쓴 타이어로 과연 막을 수 있을지가 감상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보는 저도 더는 힘들겠다고 볼 즈음에 끝까지 막아내더라고요. 0.745초 차로 1위.
우승은 해밀튼, 2위는 RBR의 베르스타펜, 3위는 보타스. 메르세데스에서 팀 트로피 받으러 올라간 크루는 Russell Braithwaite, 메르세데스 팀의 치프 파이낸셜 오피서라고 합니다. 올라가 볼 만한 사람들은 다 올라가 봤다는 이야긴가 싶은 선정같이 보였네요. 아니면 올 시즌부터 도입된 버젯 캡을 의식하고 올려보낸건가 싶기도 하고요. 살림살이 중요하죠... :Q
맥라렌도 핏스톱 오락가락하기로는 메르세데스 못지 않았는데, 그래놓고도 드라이버 둘이 각각 4위, 7위로 레이스 마친 걸 보면 페이스 자체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올해 정말 치열한 경쟁은 챔피언십보다도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 3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상위권에서 촘촘해지는 것도 재미지만 중위권이 역시 어느 정도 받쳐 줘야지 전반적인 재미가 생기는 것 같아요. 늘 포디움이 기출변형(?!)이 되는 것도 방지할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