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그랑프리 잡담/season 2021

2021-04-18 / Round 02: 에밀리아로마냐 그랑프리 - 다시 찾은 이몰라

p 2021. 5. 5. 22:37

봄의 이몰라군요. 정식 대회명으로 부르자니 너무 길어서 개최 서킷명을 따 '이몰라' 라고 부르게 되는 올 시즌 두 번째 그랑프리입니다.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열렸던 그랑프리들이 하나같이 우당탕탕 대환장파티였어서, 부디 올해는 모두모두 안전운전하기를 바랐습니다.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다보니 이곳에서 열리는 경주 때엔 유난히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바쁜 정도가 어째 가라앉지를 않아서 연습주행들 모두 제때 챙겨 보지를 못하고 트위터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실시간 언급들과 기록지만으로 간신히 체크했어요. 날씨가 서늘하다기에, 저쯤 되면 드라이버들이라면 패딩 꺼낼 날씨 아닐까 싶었는데 한 술 더 뜬 드라이버도 등장. 타이어 워머 그거 전기장판 아니냐는 농담을 이렇게 진담 비슷하게 만들어 버리는 센스. :)

 

그나저나 금요일부터 서킷에서 통신 장애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라이브타이밍 앱만 제대로 돌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차 데이터가 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문제들도 있었나봐요. 제법 큰 문제였던 모양으로, 대개 세션 마무리되면 기록지 정리해서 F1 공식 계정이랑 FIA 계정에도 정리된 이미지가 올라오는데 FP1 때는 그것도 없었습니다(FP2부턴 다행히 있었지만). 

 

 

첫 세션 상위 3인 기록이 0.058초 사이에 몰릴 만큼 초반부터 제법 촘촘하게 시작된 이몰라 주말입니다. FP1에서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영향을 미쳤는지 알핀의 에스테반 오콘과 레드불 레이싱의 세르히오 페레스 사이에 충돌이 있었는데 추가 조치 없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걸 놓고 RBR 고문인 헬무트 마르코가 페레스 잘못이라고 비난한 건, 글쎄요 역시 보통은 그런 상황이라면 자기 팀 드라이버 편을 들 텐데 말이지요. :P 일찌감치 턴9 트랙 리밋 관련 경고 - 넘으면 기록 지우겠다는 - 가 있었고, FP3같은 경우엔 처음부터 기록 삭제로 산뜻하게(?)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퀄리파잉 세션에서는 세션 시작되자마자 다들 나올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다들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그래봤자 5분 남짓이지만요. 어째 Q1 초반부터 옐로 플랙이 뜨나 했더니 알파타우리의 츠노다 유키가 크래시한 영향으로 레드 플랙 선언. 느린 그림으로 다시 보니 뒤를 시원하게 해 먹었더군요(그리고 그 결과). Q1 재개 후에는 다들 빠르게 트랙으로 나와 기록을 내기 시작했고, 1분 15초대가 Q2 전에 깨지겠다고 말 꺼내자마자 메르세데스의 발테리 보타스가 1분 14초 926을 기록했습니다. 트랙 리밋 위반 문제로 RBR의 페레스, 알파타우리의 가슬리, 윌리엄스의 라티피도 줄줄이 기록 삭제. 그래서 2분쯤 남기고 다시 나오는 차들이 꽤 많아서 Q1 막판이 꼭 Q2 후반같은 분위기가 되었어요. Q1 1위-15위 격차는 1.160초. 윌리엄스 둘 다 Q2 안착, 홈 GP(?)를 맞이한 알파 로메오가 둘 다 16, 17위를 기록하면서 Q1 마무리. 윌리엄스가 둘 다 Q2 간 게 꽤 오랜만의 일 아닌가 했는데 지난해 헝가리 GP때도 갔었다고 하네요. 

 

Q2에서도 초반부터 기록 삭제당한 드라이버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RBR의 막스 베르스타펜이 꾸준히 빨랐습니다. 이몰라의 퀄리파잉 세션만 놓고 보았을 때 RBR의 섹터 2 꾸준히 좋아 보였고요. 새 소프트 타이어를 신고 나온 맥라렌의 란도 노리스가 메르세데스의 루이스 해밀튼 기록을 0.099초 당기며 p1, 타이어의 차이가 있다지만 준수한 퍼포먼스를 보였습니다. 같은 맥라렌의 다니엘 리카도가 마찬가지로 소프트였는데도 미디움 신은 윌리엄스의 러셀에 못 미치는 기록을 냈던 것도 의외였고요. 팀 옮긴 첫 해 초반은 좀 헤맨다지만, 리카도라면 보다 빠르게 적응하지 않을까 했던 만큼 아쉬움이 있습니다. 페라리는 이번에도 Q2에서 다소 무모한 미디움대신 소프트 선택을 했고(이 편이 상식적으로 보이죠, 아직까지의 페라리 기록들을 보면) 덕택에 Q2 막판이 꽤 재밌었습니다. 역시 Q2는 체커드 플랙 떴을 때부터가 진짜라는 느낌. Q2 1위-10위 격차가 0.422초로 바짝 당겨진 것도 그렇고요. 알론소와 베텔이 Q3에 이름 안/못 올리는 2021시즌이라니 아직까지 적응이 안 되지만요. 

 

Q3 첫 시도에서 최고 기록을 낸 해밀튼과 2위의 베르스타펜 기록차가 0.091초였어서 누가 폴 포지션을 가져갈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 체커드 플랙까지 한 5분쯤 남았을 때 잠시 트랙이 싹 조용해지는 그 때는 중계로 봐도 역시 참 좋더라고요. Q3 최종 시도에서 RBR의 페레스가 p2, 베르스타펜이 p3 기록하는 한편 기록삭제형의 영향으로 내내 페이스 좋았던 맥라렌의 노리스가 리카도보다 오히려 뒷자리로 가게 되었습니다. 폴 포지션은 1분 14초 411을 기록한 해밀튼에게.

 

베르스타펜이 퀄리파잉 세션에서 팀메이트보다 처진 것도 무척 오랜만의 일이었지요. 보타스도 Q1에서 흐름 좋아 보였는데 Q2부터는 무슨 일이었는지 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레이스는 일요일이니까요. F1 드라이버(+팀)쯤 되면 어떻게든 해 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겠고요.

 

바로 그 '어떻게든'이 관건입니다. 레이스 당일, 웬일로 비가 레이스 끝나고가 아니라 시작 전부터 온 모양으로 피트레인 열리고 스타팅 그리드에 출근하는 길에서부터 별 일이 다 생겼던 모양이에요. 아스톤 마틴 차들은 뒷쪽 브레이크 문제가, 메르세데스의 보타스는 타이어 펑처, 알핀의 알론소는 배리어에 등등. 특히 아스톤 마틴의 브레이크 문제가 심각했는지 미캐닉들이 어떻게든 고쳐 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대충 중계 화면만 보더라도 분위기상 십몇 분 안에 정리가 가능한 일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스트롤까지는 수습에 성공한 것 같지만 베텔 쪽은 무리였는지 피트레인 스타트 결정. 

 

비가 오는 바람에 타이어 도박이고 뭐고 전략 측면에서는 완전히 새롭게 접근해야 할 상황 속에서 포메이션 랩 시작, L0/63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르가 가볍게 스핀해서 그래블에 빠지지만 다행히 금방 복귀합니다. L1/63 스타트에서 RBR의 베르스타펜이 정말 깔끔하게 메르세데스의 해밀튼을 앞서나갔고, 시케인에서 살짝 밀린 해밀튼이 베르스타펜과 살짝 부딪히면서 플로어에 손상이 온 게 아닐까 싶은 상황에 윌리엄스의 라티피가 차를 해먹는 바람에 L2/63 SC 소환. 해밀튼의 문제는 플로어보다도 프론트윙 엔드플레이트였던 것 같습니다. SC 상황에 하스의 슈마허가 정말 애매한 위치에서 프론트윙을 해먹는 바람에 자기가 낸 사고 때문에 피트인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고요. 여러모로 "오늘의 드라이버" 후보에 세이프티 카 드라이버를 올리고 싶어지던 레이스 초반이었습니다. 


L7/63 SC 해제, 베르스타펜이 날아가기 시작하는 한편 해밀튼은 윙 대미지 영향인지 뭔지 페이스가 좀 처져 보였습니다. 르클레르가 침착하게 페이스 높여 올라오는 가운데 맥라렌 드라이버들도 꽤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요(=6위 싸움이 흥미진진했다는 이야기). 해밀튼이 바짝 밟아 올라왔지만 이미 5초 가까이 앞서나간 베르스타펜을 잡기는 쉽지 않았겠지요. 기록들 당겨지는 걸 보면 비가 더 올 것 같진 않았지만, 언제 웻에서 슬릭으로 갈아신을지가 관건일 가운데 맥라렌에서는 팀 오더가 나왔습니다. 페이스 차이가 확연하긴 했지만, 자리를 양보받은 차가 양보해 준 차보다 확실하게 앞서나가지 않으면 민망했을 수도 있을 상황이었죠. 다행인지 뭔지 바꿔주자마자 페이스 높여 앞서나가기는 하더랍니다. 

 

레이싱 라인이 조금씩 마르기 시작하는 것 같지만 누구도 슬릭 첫 시도 담당이 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의 L21/63, 다음 랩에서 베텔이 핏해 미디움 타이어를 골랐습니다. 이왕 처진 아스톤 마틴이라면 도박 한 번 가 볼 만하다 생각했던 걸까요. 5분 전 스타팅그리드 정렬 못 한 죄로 10초 스톱 앤 고 페널티도 받은 마당이었으니 더더욱요. 베텔 구경하던 사이 해밀튼이 어느새 3.5초대까지 인터벌을 줄여 두었고, L28/63에서 베르스타펜 핏, 그 외의 드라이버들도 들어가서 슬릭으로 갈아신기 시작합니다. 베르스타펜 들어간 사이 해밀튼은 버티면서 바짝 밟아 최대한 간격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지만 L29/63 핏스톱에서 4초 이상이 걸리는 바람에 리드 유지에는 실패. 2초대였다면 가능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 약간 아쉬웠네요. 베텔은 저 뒤에 있는 게 아쉬울 정도로 좋은 페이스를 보여 주고 있던 L31/63, 여기서부터 올해 이몰라의 난장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작은 해밀튼. 한 랩 처져 있던 러셀을 앞서 나가려다가 레이싱 라인 바깥의 덜 마른 부분 때문이었는지 그대로 그래블 행, 배리어 들이받고 리타이어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인 수준으로 트랙 복귀했으나 포지션 손해를 상당히 보았지요. 문제는 그 다음의 보타스와 러셀이었는데, 이 둘이 제대로 부딪히는 바람에 SC 소환에 이어 레드 플랙까지 선언되고 맙니다. 안쪽에서 막으려고 했던 보타스, 바깥쪽에서 삐끗한 러셀, 그대로 엉켜 버린 두 차, 누구 잘못이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한 상황인데 사고는 크게 나서 아무도 안 다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한들 차에서 내리기도 전인 드라이버한테 가서 상대 헬멧 두드리며 항의하는 러셀의 행동은 매우 부적절했죠. 싸우더라도 차에서 내린 다음에 싸웠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안전 문젠데. 

체커드 플랙까지 30랩쯤을 남기고 일시정지되었던 레이스는 롤링 스타트로 재개되었습니다. 세이프티 카와 함께 얼레벌레 재시작한 레이스는 L35/63에서 또 옐로, 이번에는 알파타우리의 츠노다였네요. L38/63에서 페레스가 스핀하는 바람에 4위에서 14위까지 순위가 내려앉은 걸 봐서는 트랙이 여전히 상당 부분 젖어 있었던 모양으로, 그렇다고 슬릭을 안 신기에는 또 레이싱 라인은 웬만큼 마른 알쏭달쏭 컨디션이었던 모양이에요. 그리고 오랜만에 해밀튼의 '추월 모드'를 보았습니다. 해밀튼이야 근래 거의 앞에서만 달리다시피 했으니 볼 일이 많지는 않았는데 - 지난해 몬차가 있긴 했지만서도 - 이 드라이버는 일찌감치 추월에서도 일가를 이룬지라. :P 맡겨 놓았던 포지션 찾으러 온 것마냥 앞차들을 앞질러 나가는 건 이몰라처럼 상대적으로 도로 폭이 좁은 서킷에서도 여전하더군요. 맥라렌 팬 입장에서 맥라렌 차들이 추월당하는 걸 보는 건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저래서야 뭐 막을 수가 없는 수준의 움직임이었어서. 제끼고 나면 곧바로 1초 이상 간격을 만들어내는 것도 대단했습니다. L55/63에선 p3까지 올라왔고, L60/63에선 기어이 p2까지 가더군요. 1-2위 간격 20.3초를 남은 세 랩 동안 어디까지 줄여낼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3위에서 2위 되자마자 곧바로 다음 랩에 올 섹터 퍼플을 찍어버리는 승부욕, 흥미진진하더라고요. 레이스 우승은 RBR의 베르스타펜, 메르세데스의 해밀튼이 2위, 3위는 맥라렌의 란도 노리스. 

 

착착 추월해서 올라가는 해밀튼 그래프 무섭지요... 핏스톱할 때 빼고는 리드 잃지 않은 베르스타펜도 그렇지만.

기어박스 문제였는지 막판에 퇴근하게 된 베텔은 좀 안타깝더라고요. 피트레인 스타트에 타임 페널티에 이것저것 많았는데도 그럭저럭 괜찮은 페이스로 완주할 것 같았어서 그런지. 리카도는 개막전에 이어 여전히 페이스가 좀 애매합니다. 팀 오더가 뜬 건 맥락상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드라이버 팬 입장이라면 좀 속상할 것 같기도 하네요(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니 무슨 이탈리아만 오면 레이스가 혼파망이야... 라는 생각이 들고 마는, 그런 레이스였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이대로라면 베르스타펜과 해밀튼이 1위와 2위를 각자 한 번씩 한 셈이 되는 가운데 해밀튼이 기어코 패스티스트 랩을 가져가 드라이버스 챔피언십 리드를 지킵니다. 보타스와 페레스는 한 번씩 리타이어를 겪는 바람에 포인트 손해가 크겠습니다. 올 시즌은 그랑프리 숫자가 많은 만큼 꾸준히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챔피언십에 있어서는 리타이어하지 않는 게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특히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 측면에서). 아직 시즌 초반이니까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이 안 되지만요. :Q 

 

이번 이몰라도 재미가 없지야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고가 잦아서야 좀 곤란합니다. 세이프티 카까지는 레이스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 쳐도 레드 플랙 이상은 가급적 안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라서일까요. 부디 올해의 남은 GP들은 별 탈 없이 치를 수 있었으면 해요. 그리고 직관 .... 저는 언제쯤 갈 수 있을지. u_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