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7 / Round 08: 스티리아 그랑프리 - 놓은 것과 놓친 것
폴 리카르에 이어지는 레드불 링 2연전입니다. Covid19 범유행 이전에는 오스트리아 그랑프리로 치르던 걸 온갖 예외 투성이였던 작년 같은 자리에서 이름만 바꾸어 두 번을 열었었고, 올해도 그렇게 치르게 되었습니다. RBR 팩토리야 밀튼 케인스에 있지만 모기업(?)이 모기업인 만큼 팀 국적도 오스트리아로 달아 나가고, 서킷 이름뿐 아니라 거대 소 조형물까지 있을 정도로 대놓고 레드불 홈인 그랑프리이기도 합니다.
오스트리아 첫 GP 주말을 앞두고 영국 GP가 열리는 실버스톤 서킷에서 관객들을 특별한 인원 제한 없이 풀로 받기로 발표해서 좀 걱정되었어요. 그 동네는 역병 시국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치르겠다기에. 스즈카 서킷에서는 일본 GP 개최 여부/예매 시작 시기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는 와중이라서 더 걱정되더라고요. 호주GP 열리는 알버트 파크에서도 트랙 수정/보완 작업 사진들을 올렸습니다만 기대보다는 불안이 더 컸고요. 아부다비 GP 열리는 야스 마리나의 레이아웃 수정은 ... 그런다고 추월이 늘겠냐 정도의 느낌. :(
시즌 캘린더는 또 한 번 업데이트되어 싱가포르 GP가 있던 R16 자리에 터키 GP가 들어왔습니다. 작년에 이어 이스탄불 파크가 땜빵을 맡고 있군요. 하반기는 여전히 미친 일정...
RBR에서 알렉스 알본의 메모와 함께 올린 레드불 링 안내 그림에서도 보이다시피 서킷 구조는 단순해요. 한 바퀴 약 4.3km로 비교적 짧은 편인데다가 코너 숫자도 적어서 흐름 빠른 곳이기도 하고요. 은근히 추월이 꽤 나오는 곳인데, 어째 명장면보다는 사건사고가 많다는 인상입니다(2019시즌 RBR 막스 베르스타펜 vs 페라리 샤를 르클레르, 혹시 잊으셨다면 유튜브에 검색을).
금요일 세션들은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흘러간 편이었어요. 르클레르의 쓰레기 되가져가기와 메르세데스의 보타스가 출근길에 피트레인에서 스핀한 정도가 뿜김 포인트. RBR과 알파타우리가 리더보드 상위에 이름을 올렸고 페라리와 맥라렌, 아스톤 마틴은 맥을 못 추는 금요일이었어요(FP2 제외. 갑자기 p2, p7에 이름 올린 맥라렌 드라이버들 어디서 숨은 페이스 찾아 온 건지 몰라도 앞으로도 꾸준히 부탁합니다). RBR은 메르세데스 대비 랩타임 기준 0.3~0.4초 우위를 꾸준히 이어가다시피 했습니다. 토요일의 변수는 알파타우리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퀄리파잉 세션은 Q2 진출 커트라인 p1 +0.653, 대단히 빡빡한 Q2를 지나 Q3에선 사실상 베르스타펜을 상대로 메르세데스 드라이버들이 치른 숏 런 대결이었어요. 문제의 0.3초 격차를 많이 줄여내기는 했지만 - p2의 발테리 보타스가 +0.194, p3 루이스 해밀튼이 +0.226이었으니 - 이걸로는 맨 앞자리 가져가기에는 좀 모자랐죠(그 피트레인 스핀 때문에 3그리드 페널티가 나오기도 했고요). 한편 맥라렌의 란도 노리스가 p1 +0.279로 p4를 기록하며 스타팅 그리드 둘째 줄을 확보합니다. 폴 포지션은 RBR의 베르스타펜. 작년이나 올해 들어 이름을 꽤 올리고 있는 편입니다만 이 드라이버의 이름값과 팀의 후광을 고려하면 폴 기록은 적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탈것경주를 여러 해 보고 있는데도 포메이션 랩 때는 제가 다 긴장하게 돼요. 왜 그 긴장이 제 몫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L1/71, 스타트 웬일로 깔끔한가 했더니 섹터 2 접어들기 전에 잠시 옐로 플랙, 다시 그린. 알파타우리의 피에르 가슬리가 펑처로 퇴근합니다. 직선 구간에서 혼다 계열 PU 쓰는 팀들이 쭉쭉 앞서 나가는 것 굉장하더라고요. L7-10/71 맥라렌의 다니엘 리카도가 일시적인 파워 문제로 순위 손해를 보았고, 다행히 금방 해결되었지만 순위를 꽤 잃었습니다. 리타이어까지 가지 않아도 되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지만요.
L16/71 윌리엄스의 조지 러셀이 p8에서 버티며 어쩌면 자력 포인트피니시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안기는 한편으로, L20/71 즈음부터는 걸린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일 기차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스톤 마틴의 랜스 스트롤이 p6에서 차장님 역할을 해 p16 르클레르까지를 리드(....). 핏스톱 가져가느라 빠져나오는 것 아니면 방법이 없어 보였지요. L25/71 해밀튼이 턴4에서 순간 날아갈 뻔 했지만 카운터스티어링을 기가 막히게 넣어 돌아옵니다. 러셀은 열심히 달린 게 무색하게 L39/71에서 리타이어 결정.
25랩 남은 상황에서 베르스타펜-해밀튼 간격은 5.5초. 까딱하다간 포디움 빼고 싹 다 백마커 될 것 같이 선두권이 전력질주중인 가운데서도 타이어들은 닳고 있었죠. L55/71 상황에서 RBR이 페레스를 불러들입니다. 메르세데스가 드라이버들을 불러들여 2스톱을 가져간다 해도 남은 랩 수와 벌어지는 간격을 고려하면 따라잡기엔 늦었고, 패스티스트 랩 포인트를 챙기려면 상대방이 들어갈 기회를 주면 안 되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L70/71 해밀튼 핏, 이렇게 된 이상 마지막 랩에 무조건 패스티스트 랩을 기록해야만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 하는 사이 체커드 플랙. 베르스타펜 우승(체커드 플랙 받기 전에 속력 늦춘 걸로 아니나다를까 말이 나왔습니다), 해밀튼은 결국 그 1포인트를 챙기며 2위, 보타스가 3위에 오릅니다. RBR에서 팀 트로피를 받으러 포디움에 올린 사람은 헬무트 마르코. 과연 홈 그랑프리군요.
직선구간 속력만 봐도 PU 출력차로 예상되는 격차가 뚜렷해서, 혼다 계열들에 비해 메르세데스 계열들에겐 쉽지 않았던 주말이었어요. 속력이 뒷받침되었다면 어떻게 변칙-전략이라도 써 봤을 것 같은데 버티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지 않나 싶을 정도. 비가 왔다면 또 모를까 그렇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요.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에서 RBR이 메르세데스를 상대로 40포인트 차 리드를 가져갑니다. 더블헤더 특성상 첫 주말 결과가 다음주에도 영향을 많이 미치니까, 사실상 모나코부터 이어진 RBR의 연승 행진이 이 다음 주말에도 이어질 거라는 예상이 가능했습니다. 만약 이 다음 주말에 메르세데스가 RBR 연승을 끊는 데 성공한다면 분위기 반전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글쎄요 이 결과만 놓고 보면 쉽지 않아 보이네요. 드라이버스 챔피언십 격차도 베르스타펜이 해밀튼을 상대로 18포인트 리드 중이지만 아직 상반기 진행 중이고요. 갈수록 어려워지는 올해의 경쟁 구도. 제가 응원하는 팀들도 얼른 올라가야 할 텐데 갈 길이 멉니다. u_u
이 주말을 전후해 RBR에서 메르세데스의 엔진 관련 기술자들을 빼 가려고 시도했고 일부는 빼내는 데 성공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과, 아스톤 마틴에서 RBR 출신 에어로다이나미시스트를 영입했다는 이야기같은 업계 기술진 이동 이야기가 꽤 나왔어요. 내년에 대대적인 규정 변경이 있고 그 이후 엔진 규정 문제도 있으니 쓸 만한 인력 노리기가 굉장한 모양입니다. 갑자기 성능이 훌쩍 높아진 혼다 파워유닛을 놓고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이 다음 주말도 또 레드불 링 예정. 하나로 묶을까 하다 길어져서 그냥 GP 단위로 나누어 두드렸습니다만 그러길 잘 한 것 같네요, 얼른 나머지도 두드려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