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그랑프리 잡담/season 2021

2021-09-05 / Round 13: 네덜란드 그랑프리 - 36년만이었지만 내년에는 웬만하면 만나지 말자

p 2021. 9. 6. 12:22

하반기 첫 3연전 두번째 그랑프리죠. 지난 주말 벨기에 GP를 둘러싼 논란이 워낙 굉장했다보니 FIA에서도 규정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FIA 회장 명의(!) 로도 냈답니다. F1에서도 입장을 냈고요(환불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다는 게 포인트). 벨기에 이후 다들 날씨 걱정이 많았는데 주말엔 맑을 것 같다는 예보가 있었지요. 다행히 내내 현지 날씨는 좋았습니다. 

 

그 와중에 한국 시청자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같은 소식도 있었습니다. 9월 30일자로 스타스포츠 채널 서비스 종료: 디즈니플러스 서비스 확장과 맞물려 벌어진 일인데 이대로라면 10월 한 달이 통째로 뜨게 되어서요. F1TV Pro 서비스 지역에 한국은 아직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그 쪽을 이용하려면 현 시점에는 VPN 우회를 해야만 하는 지경이라 앞으로 중계 어떻게 보나 막막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제발 10월 전에 어떻게든 해결이 되기를.

 

내년 시트 문제는 여전히 정신없습니다. 오가는 소문만 봐서는 알파 로메오는 엔진을 세 개쯤 쓸 분위기고 윌리엄스는 차가 여섯 대쯤은 될 것 같은 분위기? 그래도 알파 로메오에 한 자리가 나는 것만큼은 확실해져서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어요. 미디어뿐 아니라 FOM에서도 어째 떠오르는 신예들과 경험 많은 드라이버들의 갈등이나 대결, 혹은 사제 구도(?)를 만들어보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업계 전반이 그러든지 말든지 멀티챔들은 자기 할 말을 합니다. 사실을 적시했을 뿐인데 자기 자랑처럼 되어 버리는 디펜딩 챔프도 흥미로웠고요. 한때는 다들 한 성격 하던 드라이버들이 어느새 '어른'이 된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해요. 

 

네덜란드 GP는 2020시즌 캘린더에 새로 들어오기로 했다가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캘린더가 완전히 틀어지면서 취소되고, 올해 다시/처음 열리게 되었습니다. 저한테도 F1 보아 온 이래 네덜란드는 처음인데, 그도 그럴 것이 1985년 이후 처음 열리는 레이스이기 때문입니다. 또 많은 드라이버들에게도 "처음"일 것이, 이 레이아웃으로 잔드보르트에서 F1 레이스가 열리는 것도 처음이기 때문이에요. F3같은 아랫시리즈 경기는 그전에도 열렸던 모양인데 F1 개최를 위해 대대적으로 서킷 정비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F1에 있는 드라이버들 중에서도 그 시절을 달려 본 드라이버들은 있지만, 레이아웃은 다르죠. 사실상 현 그리드에서 여길 달려 본 유일한 드라이버는 레드불 레이싱의 막스 베르스타펜. 아무래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구간은 턴3와 턴14의 뱅크(특히 턴14. 공식 서킷 맵은 이쪽을 참고하세요)인데요. 한 해 늦어지긴 했어도 올해 결국 보긴 보네요. 세이프티 카의 온보드로 본 잔드보르트 첫인상: 좁아요. 저는 좁고 코너 수가 두 배쯤 많은 인터라고스같다고 생각했는데, 헝가로링 조금 더 빠른 버전같다는 평도 있더라고요. 뱅크가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는 이 클립을 참고하세요. 유의미한 추월 포인트는 턴1뿐인 것 같았습니다만 그건 레이스 때 가 봐야 알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레이스를 해 보니 그보다 더 심했습니다. 

뱅크는 턴3, 턴14에.

그건 그렇고, RBR의 베르스타펜에게는 홈 그랑프리기도 하다 보니 시작 전부터 굉장한 분위기였던 모양입니다. 관객 소지품 반입 제한한단 얘기까지 있었을 정도로요. 믹 슈마허마저 연막탄(?)문제를 한 번 짚고 넘어갈 정도. 올해 실버스톤 이후로 메르세데스의 루이스 해밀튼 - RBR의 베르스타펜 갈등 구도는 미디어들이 불 난 집에 부채질 하는 수준을 넘어서 베르스타펜 쪽이 직접 장작 갖다놓고 풀무질하는 레벨이 되어 버려서 좀 걱정스럽습니다. 해밀튼 쪽에서는 일단 더 기름을 붓진 않았지만 이젠 팬들도 안 참기로 한 듯.

 

 

이번 시즌 들어 거의 매주 업데이트를 가져오다시피한 RBR에 비해 메르세데스는 이번에도 특별한 업데이트 없이 참가한 모양입니다(특히 에어로 쪽). 지난 여섯 레이스 중 다섯 차례에서 RBR의 베르스타펜이 폴 포지션을 가져갔다 하니, 팀도 팀이지만 커리어 폴 중 절반쯤이 이번 시즌에 나온 거면 드라이버 입장에서도 확실히 뭐든 걸어 보고 싶을 만 하겠습니다.

 

금요일 오전 F3 일정부터 등장한 레드 플랙은 F1의 금요일 연습주행 두 차례 모두에 꽤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이한 부분은 둘 다 메르세데스 파워유닛을 쓰는 팀에서 생긴 일이라는 건데요. FP1에선 아스톤 마틴의 제바스티안 베텔 차가 MGU-K가 원인이었던 것 같은 엔진 문제로, FP2에서는 메르세데스의 해밀튼 차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출력을 잃어 트랙 가장자리에 차를 세우는 일이 벌어졌어요. 그 뱅크 구간이 엔진/연료 탱크 쪽에 영향을 미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금요일 시점에선 확인이 어려웠고요. 

처음 오는 곳이니만큼 FP1 세션 시작하자마자 드라이버들이 바쁘게 트랙으로 나왔는데, 트랙 길이가 짧다 보니 - 4.259Km니까 아마 올해 캘린더에서는 모나코 다음으로 짧을 거예요 - 퀄리파잉 세션의 트래픽 문제가 벌써부터 걱정되는 수준이었습니다. MGU-K 문제를 호소하며 개러지로 들어갔던 베텔이 다시 트랙으로 나오면서 문제가 해결되었나 했더니 그렇지도 않았는지 피트레인 출구 부근에 차를 세웠어요. 문제는 수습에 시간이 오래 걸린 것뿐 아니라(전기 계통 문제를 고려해서였겠지만) 레드 플랙 선언 이후에도 라이브타이밍 앱에서 레드가 옐로 플랙으로 바뀌는 등 레이스 컨트롤 지시가 오락가락했던 점이었습니다. 30분 넘게 레드 플랙으로 시간을 보낸 뒤 체커드 플랙까지 6분여를 남긴 시점에야 FP1 세션이 재개되었고 소프트로 기록 낸 메르세데스의 해밀튼이 1분 11초 500으로 p1. RBR의 베르스타펜이 p2에 그친(?)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페라리의 까를로스 사인스, 샤를 르클레르의 기록이 흥미로웠어요. 이 때까지만 해도 생각보다 이번 주말 페라리를 기대해 볼 만 할 것 같다는 느낌.

석연찮은 이유 - 정확한 이유도 안 알려 줌 - 로 5분 늦게 시작된 FP2에서도 세션 초반부터 레드 플랙이 선언되고 맙니다. 메르세데스의 해밀튼이 미디움 타이어로 기록 낸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출력을 잃었다는 팀 라디오를 보냈고, 담당 레이스엔지니어인 보노가 일단 차를 세우라고 답해서 턴8 바깥쪽에 차를 세웠어요. 온보드에서 스티어링 휠의 데이터들이 잘 안 보여서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면 FP1 베텔 사례처럼 차에서 연기가 난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베텔도 FP2엔 참가했고요. 그 사이 차를 고쳐 낸 아스톤 마틴 사람들 대단합니다). 46분 40초쯤을 남기고 세션 재개. 30분쯤을 남기고 또 한 번 레드 플랙 선언, 이번에는 턴11 그래블에 빠진 하스의 니키타 마제핀입니다. 이번 주말에 드라이버 실수로 나온 첫 레드 플랙이었네요. 26분 10초쯤을 남기고 트랙 클리어, 기록을 바짝 올리기보다는 꾸준히 달리는 데에 집중한 후반이었습니다. 페라리 드라이버들이 리더보드 최상단을 가져가며 세션 마무리. 보통 금요일 오후에는 롱 런 페이스를 가늠해 볼 수 있을 만큼 데이터를 뽑는데, 해밀튼 쪽은 그럴 기회가 사실상 날아간 상황이라 메르세데스에게 다소 어려운 주말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금요일 세션들은 그렇게 마무리. 

 

한편, FP2에서 레드 플랙 나왔을 때 RBR의 베르스타펜이 아스톤 마틴의 랜스 스트롤을 추월했다는 지적이 나왔지요. 온보드 영상으로도 남아 있던 상황이었고. 올 시즌에도 레드 플랙 관련 규정 위반으로 이미 페널티를 받았던 드라이버들이 있었던 만큼 결과가 궁금했습니다. 트위터에서 다른 분들과 트윗 나누면서도 했던 이야기인데 이 문제 때문에 제 타임라인 한쪽의 맥라렌 팬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페널티 여부를 지켜보고 있기도 했지요. 올해 바쿠에서 레드 플랙 떴을 때 맥라렌의 노리스가 피트레인 입구 들어가긴 늦은 시점이라 - 들어가기엔 위험한 위치였고요 - 어쩔 수 없이 바로 못 들어갔지만 규정 위반이란 이유로 페널티에 벌점 나왔던 일이 있었거든요. 이번 판단 결과는 추가 조치 없음이었습니다만은. 규정 적용에 대한 최소한의 일관성이라는 게 설마 특정 팀 특정 드라이버에게만 꾸준히 후한 건 아니겠지요. :P 

 

토요일, 알파 로메오의 키미 라이코넨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그 자리를 리저브 드라이버인 로베르트 쿠비차가 채우게 되었습니다. 지난 벨기에 주말까지 대기하고 있던 칼럼 아일롯에게는 아쉬운 일입니다(이번 주, 다음 주 다른 모터스포츠 일정들로 F1 주말에 오기 곤란헀다더라고요). 몬차까지도 쿠비차가 달리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토요일 FP3에서도 레드 플랙 상황이 또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페라리의 사인스. 턴3에서 꽤 크게 부딪혔고, 드라이버는 괜찮았지만 차 손상이 상당해보여서 퀄리파잉 세션 참가가 가능할지 걱정되는 수준이었습니다. 남은 시간 14분쯤까지 RBR의 베르스타펜이 소화한 랩 수가 크래시로 조퇴한 사인스와 같았던 걸 보면 RBR 쪽에서 엔진 아끼기 모드에 들어간 걸까 싶기도 했네요. 세션 막판에 턴10 부근에서 하스의 믹 슈마허도 그래블을 한 번 갈고 나옵니다. 페라리의 르클레르도 비슷한 실수를 했는데, 르클레르 쪽이 컨트롤이 조금 더 나았는지 그래블엔 안 빠졌지요. 까다로운 구간이긴 한 듯. 페라리가 보여 주었던 페이스가 무색하게 토요일은 RBR과 메르세데스의 경쟁 구도, 그렇지만 RBR이 많이 앞선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퀄리파잉 세션입니다. 잔드보르트는 추월이 좀처럼 쉽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가 진작부터 나왔었죠. 페라리는 시간 안에 차를 고쳐 사인스를 Q1에 내보내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Q1에서 1-2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르클레르 1분 9초 829, 이번 세션 들어 첫 1분 9초대 기록인데다 RBR의 베르스타펜보다 0.207초 빨랐네요. Q1에서 메르세데스만 미디움 타이어로 기록을 냈는데, 나머지가 모두 소프트를 사용한 상황에서 해밀튼 p6 보타스 p8이니 잘 막은 셈입니다. 윌리엄스에서 라티피다 1분 10초 093으로 p5, p11의 러셀보다 0.289초 앞선 기록을 낸 것도 재미있지요. 이번 Q2 진출 컷은 p1 +0.660, 맥라렌의 노리스가 문 닫고 Q2 진출에 성공합니다. RBR의 세르히오 페레스는 p16 기록하면서 Q2 탈락. 팀메이트 베르스타펜보다 0.5초쯤 느렸을 뿐인데 그렇게 되었네요.  

Q2부터는 모두모두 소프트입니다. RBR의 베르스타펜이 눈에 띄게 앞선 가운데 3분 53초 남기고 레드 플랙. 이 시점까지 p10 기록이 p1 +0.962였어요. 레드 플랙 원인은 윌리엄스의 러셀로, 턴13에서 리어 그립 잃으면서 제대로 코스아웃 - 방호벽에 크래시. 그래도 부딪힌 자리가 거의 끝쪽이었고 차 심하게 부서지거나 하지 않아서 개러지로 스스로 돌아올 수 있던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세션 재개, 3분 44초부터 시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으나 1분 37초 남기고 또다시 레드 플랙, 이번에도 윌리엄스(라티피). 턴8에서 방호벽에 부딪히면서 차가 좀 심하게 망가졌고 세션 재개 없음 공지가 떴습니다. 아무튼 이 레드 플랙으로 인해 Q2 두번째 시도들이 무산되면서 알파 로메오의 지오비나치가 Q3 진출하는 놀라운 토요일입니다. 러셀, 스트롤, 노리스, 라티피, 츠노다가 Q3 탈락. 노리스 막 플라잉 랩 시작한 시점에 리카도도 아웃랩 도는 중이었어서 맥라렌 입장에서는 아쉬웠겠어요. 둘 다 Q3 빠듯하게나마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만 이런 상황은 어떻게 미리 준비할 수도 없으니 운이 없었다고 보아야겠지요. 남은 시간이 아슬아슬하게 한 번 시도 정도는 해 볼 수 있는 정도였어서 재개 공지 없이 그대로 Q3 가기로 한 건 좀 의아했습니다만.  

방호벽 보수 문제로 Q3 시작이 5분 미루어졌습니다. 그 사이 RBR에서는 레이스 디렉터에  불평을. 이번 시즌 RBR 여러모로 굉장하기는 해요. 

 

첫 시도에서 RBR의 베르스타펜 p1. 메르세데스의 발테리 보타스가 +0.299로 p2, 해밀튼 +0.345로 p3. 페라리의 르클레르 잘 깎는 것 같더니 p5. +0.922면 차이가 크긴 하지요. 3분 10초쯤 남기고 페라리들부터 다시 트랙에. 피트레인 출구에서 시간 끄는 드라이버들 참 ... 이해야 합니다만은. 체커드 플랙까지 대략 10초를 남기고 해밀튼이 플라잉 랩을 시작합니다. 섹터 2까지는 그린이기는 해도 베르스타펜 기록과 차이가 상당해서 어렵겠구나 싶었는데, 섹터 3 퍼플을 기록하더군요. 그 섹터 기록이 베르스타펜 21.457, 해밀튼 21.336로 이것 하나로만 해밀튼이 0.121초를 줄인 셈입니다. 최종 0.038초차로 해밀튼 p2였습니다만, 그 p2 랩이 베르스타펜 첫 시도와 소수점 아래 세 자리까지 같았던 것도 재미있지요. 설령 베르스타펜이 2차 시도에서 기록을 더 줄이지 못했더라도 먼저 기록을 낸 만큼 폴 포지션은 베르스타펜에게 갔겠지만, 처음 온 서킷에서 FP2 한 세션을 사실상 통으로 날리고도 이 퍼포먼스를 낸 건 드라이버인 해밀튼과 메르세데스 팀 모두 굉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세도 그렇고요. :) 

한편, Q2 도중 하스의 니키타 마제핀과 믹 슈마허가 아스톤 마틴의 베텔 진로를 방해한 일이 있었는데요. 스튜어드들이 이에 대해 페널티 처분을 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규정 적용만큼이나, 관련된 드라이버의 의견을 언제는 기각했다가 언제는 수용하는 문제도 일관성과 원칙 측면에서 비판받을 소지가 크다고 봅니다. 불공정 위에 세워진 F1이라지만 최소한의 신뢰는 가져가야 하지 않겠어요? :( 

 

레이스를 앞두고 RBR에서 페레스 차의 엔진을 비롯한 여러 부품들을 교체하면서 피트레인 스타트를 확정합니다. Q2 탈락, 추월이 까다로운 트랙 특성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선택이었죠. 재미있게도 이 날의 추월은 모조리 페레스가 담당하다시피 했습니다만. 드라이버 몫도 몫이지만 역시 차를 잘 만들고 볼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피트레인 좁아서인지 핏스톱 과정에서 다른 팀을 방해하는 일 없게 하라는 경고가 레이스 전에 있었지요. 모나코보다 더 빡빡하다던데 그 영향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방역 수칙 때문에 수용 인원을 꽉 채워 받지 않고 일부 줄였다지만 잔드보르트 서킷은 스즈카의 분위기를 한 드라이버에 집중하고 몬차의 광기를 곱한 것같은 광기의 현장같더라고요. 시작 전부터 관중들이 오렌지색 연막탄을 터뜨리고 난리도 아닌 가운데, 화창한 날씨와 함께 레이스 스타트. 첫 코너를 무척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매끈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첫 랩부터 RBR의 베르스타펜이 메르세데스의 해밀튼을 상대로 2초 가까이 앞서나가면서 별 일 없으면 이대로 폴 투 윈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예상 그대로였어요. 

L3/72 리카도 차 문제로 의심되는 리포트가 윌리엄스의 러셀로부터 나와서 엔진 문제를 메르세데스 계열들이 다 돌아가며 치르는 주말인가 싶었습니다. L6/72 DRS 사용이 가능해졌지만 이미 차간거리들이 너무 벌어진 상황. L7/72에서 알핀의 오콘이 팀라디오로 불평했지만 영 앞차를 뛰어넘지 못하더군요. L13/72 아스톤 마틴의 베텔이 일찌감치 핏스톱을 가져가면서 하드 타이어로 교체했는데 이것 역시 결론적으로는 전략적 실패. L21/72 해밀튼 핏, 그러나 메르세데스 핏크루들이 3.6초짜리 핏스톱을 해 버리는 바람에 베르스타펜 언더컷에 실패합니다(RBR 핏크루가 2.7초짜리를 했는데도 말이죠). L35/72까지 옐로 플랙 한 번 없는 레이스, 주말 내내 넘치던 레드 플랙들을 감안하면 팀들이 세이프티 카 상황을 당연한 것으로 예상했던 나머지 다같이 전략 문제에서 헛다리를 짚은 것일까 싶기도 해요. RBR이야 차 성능을 바탕으로 앞서나갔다지만. L40/72에서 해밀튼 2스톱째, 베르스타펜 상대로 한 랩 앞서 핏했습니다만 트래픽과 핏스톱 소요 시간 차이(2.5 미디움 vs 2.1 하드)로 인해 또 한 번 언더컷에 실패합니다. 두 번째 스틴트를 좀 더 길게 가져가 차라리 오버컷을 노렸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데 결과를 놓고 하는 이야기니까 그 순간 피트월의 판단은 어땠을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이것도 실수라면 실수인 셈. 

맥라렌의 석연치 않은 포지션 스왑, 더티 에어 영향인지 추월은 커녕 좀처럼 페이스를 올려 간격 좁히는 드라이버들이 없다시피한 상황 속에 L63/72쯤 되면 p6부터 백마커가 되고 맙니다. L68/72 보타스 핏, 뒷차와 45초 넘게 간격이 생긴 상황이어서 5초대 핏스톱이라는 평상시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포지션 손해 없이 p3 복귀. 흥미롭긴 하지만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패스티스트 랩을 기록하지 말자는 팀라디오가 보타스에게 나왔습니다. 드라이버 챔피언십 경쟁을 고려해 - 1포인트의 소중함 - 그 시점까지 해밀튼이 가지고 있던 패스티스트 랩 기록을 가져가지 말자는, 우회적이라기엔 직설적인 팀 오더였는데요. 그러거나 말거나 보타스는 찍었죠. 그런 점이 좋고. 체커드 플랙까지 사실상 한 랩 남은 상황에 해밀튼 핏, 예상대로(?) 소프트 타이어로 교체 후 패스티스트 랩을 가져갑니다. 메르세데스 피트월의 쪼잔함과 별개로 이 상황에 '플랜 F'를 가려면 보타스를 먼저 핏 시키는 게 맞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결정을 미뤄야만 RBR 쪽에서 반격(?)을 못 하니까요. 보고 듣는 입장에서는 입맛이 써도요. 

체커드 플랙, 우승은 RBR의 베르스타펜, 메르세데스의 해밀튼과 보타스까지가 포디움에. 여러 팀들에서 뒷말이 나오긴 하겠습니다만 RBR만큼은 깔끔하게 퍼스트 드라이버의 홈 그랑프리 폴 투 윈에 성공합니다. RBR에서 트로피 받으러 올라간 사람은 Richard Wolverson인 모양. 다 지나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그 베르스타펜 레드 플랙 상황 스트롤 추월 건에 페널티가 나왔어도 베르스타펜이 우승했을지는 다소 의문입니다. 포디움엔 갔을 것 같지만요. 어쨌거나 홈 그랑프리 우승인 만큼 각별할 텐데, 안전 문제를 고려해서인지 관중들의 트랙 습격을 막은 게 참 다행으로 보였어요. 중계 보면서 분위기가 몬차보다 뜨겁게 느껴진 곳은 처음... 

RBR 외의 모든 팀들이 전략 판단 실수 또는 차량 성능 한계, 내지는 그 둘 다를 보여 준 레이스였습니다. 전략 담당자들이 단체로 뭐 잘못 먹었나 싶을 정도였네요. 살다살다 아스톤 마틴 사람들까지 이렇게 괴상한 판단 하는 건 처음 보아서요. 그나저나 그런 실수들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재미없는 레이스였는지, 3위 보타스와 4위 가슬리 간격이 30초가 넘었습니다. p4부터 모두가 백마커였던 건 덤. 핏레인 스타트 했는데도 포인트 피니시에 성공했으니 RBR의 페레스야말로 오늘의 드라이버일 만 합니다. 

 

베르스타펜이 우승하면서 해밀튼을 상대로 드라이버스 챔피언십 3포인트 리드를 가져갑니다.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 쪽은 메르세데스가 리드 이어가지만 격차 작고요(12포인트). 이런 분위기라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경쟁하게 될 가능성이 높겠어요. 알파타우리에서는 피에르 가슬리가 사실상 혼자서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RBR 시트는 페레스 것이라는 게 참. :( 드라이버 조합에 있어서는 여전히 메르세데스가 그리드 최고라 생각하는데, 시즌 내내 계속되고 있는 핏스톱 문제와 최근의 아쉬운 스타트들은 좀 더 개선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째 메르세데스 피트월과 레이스 서포트 팀도 좀 초조 모드인 것 같은데, 드라이버만 믿고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 레벨을 종종 요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안전한 선택으로 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가끔은 확 질러야(?) 할 때가 있죠. 몬차에서는 잘 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생각 드는 걸 보면 저도 메르세데스에 마음이 많이 가기는 하는 모양이에요. 관심 두고 지켜봐 온 시간들이 있어서 그런지. 



어쨌든 한때 그랑프리 열리다가 오랫동안 캘린더에서 빠진 곳은 다 이유가 있었나보다 싶은 주말이었습니다. 레이스에서야 다행히 별 일 없었다지만 모나코나 바쿠, 싱가포르같은 도시 한복판도 아니고 전용 서킷에서 이렇게나 많은 레드 플랙이 나오는 건 아무래도 지켜보는 입장에서 걱정되지요. 서킷 설계할 때 이런저런 시뮬레이션도 해 보고 어쩌고 한다지만 진짜로 차들이 달려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는 걸 감안해도요. FIA Grade 1인 곳이라고 해도 마음 놓기 어려운데, 시즌 끝자락에 새로 들어오는 사우디아라비아(제다)는 좀 걱정스럽습니다. 괜찮아야 할 텐데요. 

다음은 이탈리아 그랑프리, 몬차입니다. 실버스톤에 이어 스프린트 퀄리파잉이 예정된 GP이기도 하고요. 여긴 많이 달려 보았으니까 별 일 없겠지-라고 생각하긴 무슨. 그랑프리 주말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그게 꼭 예상한 대로는 아닐 수 있으니까... 이번 주말도 침착하게 불안해하면서 지켜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