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9 / Round 02: 사우디아라비아 그랑프리 - 뒤집느냐 마느냐
한 주 쉬고 돌아온 두번째 라운드,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스포츠워싱 문제가 하루이틀 있는 건 아니라지만 근래의 F1에선 특히나 심하단 느낌이지요? 첫 개최였던 2021시즌엔 두고두고 회자될 판정 시비들이 있었고, 바로 지난 시즌인 2022시즌에는 미사일 위협(!) 속에서도 개최를 강행해 반발이 컸던 만큼, 이번에만큼은 멋진 프로파간다가 될 수도 있었겠으나, 매번 모든 것이 주최측들의 바람대로 흐르지는 않게 마련입니다. 22시즌 제다 언급을 회피하면서 21시즌의 스릴을 강조하려던 태도도 어쩐지 의도가 들여다보여 민망한 가운데 주말이 시작되었어요. 그리고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시차 때문에 주말 내내 고통을 겪었고요. 아, 정말 이런 걸 끝까지 본 사람들한테도 주최측이 뭘 좀 주든지 해야 되는데(농담 반 진담 반).
서킷 맵이 여러 번 업데이트되었는데 변경점 핵심은 DRS 구간 설정 문제였습니다. 아직 시즌 극 초반이지만 RBR 강세가 너무나 빤히 들여다보이는 수준으로 다른 팀과의 차량 성능 차이가 명확하다 보니 이 부분도 그렇게 많이 깊게들 짚고 넘어간 것같진 않아요. 변수가 되기엔 너무 사소했는지... 그 정도로 지금 RBR의 우세가 굉장하기는 합니다(논란의 여지들이 있어서 그렇지). 연습주행들 봐서는 RBR이냐 아스톤 마틴이냐를 논하기에도 민망해 보일 정도여서, 결국 RBR의 맨 앞줄 독차지냐 그래도 AM에서 한 자리는 가져가냐 정도의 느낌으로 FP3까지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사이 제법 성능을 끌어올려 온 메르세데스와, 첫 그랑프리부터 파워 유닛 문제를 호되게 겪는 바람에 르클레르 10그리드 페널티를 안고 시작하는 페라리 쪽에 더 시선이 가기는 했네요. 그래도 큰 흐름을 바꾸어 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인상입니다.
연습주행 내내 메르세데스들은 묘하게 헤맸고 - 리어 불안정이 여전해 보였습니다, 바레인 GP 때보다는 소폭 나아진 듯도 했지만 - 지난 시즌과 비슷하게 조지 러셀이 섹터 1에서 루이스 해밀튼을 앞서는 흐름도 이어졌고요. 드라이빙 스타일 차이인지 뭔지, 다른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그걸 고려하지 않더라도 섹터 1에서의 차이가 러셀이 이 주말 해밀튼을 상대로 보인 가장 큰 강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아스톤 마틴 차들은, 정확한 숫자는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체감으로는 지난 시즌 대비 2초 정도는 퍼포먼스를 끌어올린 것 같았는데도 결과는 뭔가 아쉬웠네요. (상대적)저속 코너 처리가 아무리 좋다 한들 저속/고속 코너고 직선 구간이고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준 RBR에 비하기는 어려워 보였어서요 - 연습주행까지는 이런저런 셋업 차이가 가능했다지만 퀄리파잉 세션부터는 그게 어렵죠. 그냥 RBR 차들이 빨라서 생긴 문제인 셈.
AM이 살짝 헤매는 것처럼 보이는 와중에 마침(?) 페라리 쪽에 그리드 페널티가 있으니 더더욱 안정적인 RBR 1-2가 될 것 같았으나 이게 웬걸, Q2 초반에 베르스타펜 차에 문제가 생기면서 기록을 내지 못했네요. 손이 빠른 RBR 크루들에게도 6분여를 남기고 차를 고쳐 다시 내보내기는 무리였는지 그대로 베르스타펜 p15 확정. 르클레르가 +10 페널티를 안고 시작한 걸 감안하면, 근처에서 시작해 재미를 더하겠다는 건지 뭔지 ... 기어박스 교체 후 벌어진 일이라 더 의아하긴 했습니다. 토요일 퀄리파잉 세션 후에 팀 미팅에서 빠졌단 얘기도 나왔던 걸로 보아 RBR/베르스타펜 쪽의 의도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만은. 폴 포지션은 예상대로 RBR에, 그런데 페레스네요. 지난해에도 폴 시터였긴 했는데 페레스가 딱히 퀄리파잉 세션에 강하단 이미지가 있는 드라이버는 아니다보니 의외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2주만에 성능이 나아지긴 어렵다지만 뒷걸음을 쳐 버린 것만 같은 몇몇 팀 - 맥라렌이 특히 - 들이 있었고, 그 외엔 이렇다할 이변 없이 세션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스톤 마틴의 페르난도 알론소는 유력한(!) 폴 포지션 후보였는데 아쉽게도(?!) p3 마무리. 르클레르 페널티를 감안하면 스타팅 그리드는 p2, 맨 앞줄에서 출발하는 만큼 무척 오랜만의 - 거의 십 년 만의 - F1 우승을 노려 볼 만도 한 상황이었습니다. 증발 직전이었던 레이스 기대치를 어쩐지 높여 주는 알론소의(+AM의) 행보... 진짜는 체커드 플랙 이후에 펼쳐질 거라고는 그 시점까진 몰랐지만요.
제다 코니쉬 서킷이 워낙 사건사고가 많았다 보니, 안전 측면에서 레이아웃 일부 수정을 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고로 인한 레드 플랙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웠습니다. 사실 레이스가 중단되는 것보다도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 자체가 싫기 때문에 - 그럴 만 한 사고라는 얘기가 되니까 - 그저 안전하게 잘 마무리되기만을 바라게 되는데, 시작 전부터 2021시즌 레이스를 꺼내며 DSQ가 나오고도 남았을 '브레이크 테스트' 사건을 쌍방 잘못으로 치부한다든지 하는 사실관계 왜곡(?)을 시도하는 건 여러모로 껄끄러웠고요. 과실 있는 쪽(?)에 마음 쓰일 분들한테도 굳이 이걸 꺼내야 되나 싶은 사건이었지 싶은데 ... 뭐 F1TV 중계팀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합니다. :)
여튼 레이스는 시작했고 포메이션 랩 끝날 즈음의 긴장감은 항상 저의 몫이고 ... 스타트 직전 브레이크에서 연기 비슷한 걸 피워 올리고 있던 아스톤 마틴의 랜스 스트롤 좀 걱정되더라고요. 알론소는 명불허전 로켓 스타트를 보여주었고, 상위권 유일의 하드 타이어 스타터였던 해밀튼은 포지션 유지에 성공합니다. 이번에만큼은 데뷔 후 첫 포인트 피니시에 성공하나 싶었던 맥라렌의 오스카 피아스트리는 첫 랩 난리통에 그만 대미지 입고 L2/50에서 핏, 프론트윙 교체. 그리고 알론소의 스타트 위치 문제 - 그리드에 맞게 정렬하지 않았음 - 로 5초 타임 페널티가 부여된다는 레이스 컨트롤 메시지가 나왔는데, 이게 레이스 끝나고 벌어질 그 난장판의 효시였을 줄은 보는 그 순간엔 몰랐죠.
제다 코니쉬가 바레인 사키르처럼 타이어를 뜯어먹는(?!) 트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RBR - AM - 그 외, 라는 구도가 너무 명확했습니다. 페라리의 르클레르가 소프트로 스타트해 L13/50 시점 p6까지 올라갔지만 쉽지 않아 보였는지 L17/50에서 핏, 미디움으로 스타트했던 알핀의 에스테반 오콘도 같은 랩에 핏 했던 걸 보면 피렐리의 타이어 전략 예측이고 뭐고... 싶은 감도 있었어요. 한편 L18/50 스트롤이 리타이어하면서 세이프티 카가 발령됩니다. 스트롤이 트랙 한가운데 멈춘 것도 아니고, 런오프 그것도 최대한 트랙 벗어난 쪽에 곱게 주차했던지라 VSC로도 해결 가능할 것 같았는데 이걸로 풀 SC가 뜬다고? 싶었지만 - 이때를 노려 여러 드라이버들이 피트인합니다. SC나 레드 플랙 상황을 뺀다면 사실상 1스톱 레이스인 제다에서 그 애매한 시점 SC는 여러 팀들의 전략을 망쳐 놨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알론소는 이 틈에 핏스톱을 가져가면서 5초 타임 페널티도 함께 수행합니다. SC 상황에 타임 페널티를 수행하는 게 규정에서 확실하게 금지된 부분은 아니지만 그것이 페널티 수행으로 적절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올 법하지 않나 - 는 레이스 끝나고 벌어질 그 난장판의 씨앗 정도 ... 효시는 아까 올렸으니까요?
SC 해제 이후 DRS 사용이 다시 허용되기 전까지 2-3랩 사이 얼마나 트랙 포지션을 지켜낼지 또는 추월에 성공할지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였습니다. 열리기 직전쯤 될 L22/50 페라리의 카를로스 사인스를 상대로 메르세데스의 해밀튼이 보여 준 추월 참 깔끔했지요. L23/50까지 러셀이 RBR의 베르스타펜을 상대로 최대한 버티는 모습 보여주었지만 성능 면에서 훨씬 앞서는 차 +DRS 오픈 앞에서는 어렵더라고요. L24/50에서 알론소도 베르스타펜에 추월당한 걸 보면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차이라고밖에는요. 여기서 알론소(하드 타이어) - 러셀(하드) - 해밀튼(미디움) 이라는 상황이 잠시 이어졌는데, 페이스 차이가 작은 상황에서 뒷차가 하나 더 부드러운 타이어를 장착한 상황에서는 팀메이트를 붙잡고 있기보다는 보내 주는 편이 전략 면에서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메르세데스 피트월의 판단은 조금 달랐던 모양입니다. 뭐 페라리나 RBR 피트월만 했겠습니까만은.
막판에 있었던 하스의 케빈 마그누센과 알파타우리의 츠노다 유키의 포인트피니시 자리 싸움 외에는 큰 순위 변동 없이 레이스가 (일단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우승은 RBR의 페레스, 포디움에는 페레스, 베르스타펜, 알론소. RBR의 2연속 1-2 피니시이자 알론소에게는 F1 커리어 100회째의 포디움 피니시이기도 했는데요, 그 5초 페널티 정상 수행 여부 관련 레이스컨트롤 메시지가 포디움 세리머니가 진행되고서야 나왔고 - 덕택에 페널티가 나오는 순간 포디움이 날아가는 괴상한 모양새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결과는 10초 페널티 부여. 지난 바레인 GP 알핀의 오콘 상황과 비슷하게, 5초 페널티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피트 크루가 차를 건드렸다는 이유였는데요. 아스톤 마틴에서 이에 항의했고 항의가 받아들여져 결과가 다시 정정되기까지 다 합쳐 두어 시간이 걸렸으며 ... 거의 레이스 치를 만큼이었네요.
정말 굉장한 난장판이었는데 - 왜냐면 F1 공식 계정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알론소의 100포디움을 축하했다가 페널티 나오니 그걸 다 내리고, 정정되니 다시 축하하는 상황이었어서 - 저한테는 자고 일어났더니 결과가 바뀌어 있었다는 결말, 그리고 <FIA 스튜어드들이 잘못 내린 결정을 정정하는 모습>이라는 귀한(?) 사례도 남겼습니다. 그리고 역시 F1+FIA의 전례가 없이 큰 흠인 2021시즌 아부다비 GP 문제가 다시 불려나왔고요. 자업자득, 사필귀정(이었으면 좋겠군요).
레이스 자체로는 평이하다 못해 지루한 수준이었고, 결과가 너무 빤히 보이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주말 시작 전부터 나왔던 것치고는 다른 의미의 사건사고 - 체커드 플랙 나온 이후에 벌어지는 - 가 많았던 주말이었습니다. 와중에 미디어-비스무리들이 저마다 밀고 싶은 어떤 '서사'를 자꾸만 억지로 들이미는 2023년이기도 하군요. 다행히 정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디스 이즈 포뮬러 원.
그나저나 2011시즌 RBR 이후 이렇게까지 한 팀이 앞서나가는 건, 그 V6 터보 하이브리드 도입 초기의 메르세데스(2014-16)에서도 보지 못한 수준입니다. 드라이버스 챔피언십 순위로 보면 그렇게까지? 싶다가도,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 쪽을 보면 확연하죠. 물론 시즌은 길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메르세데스는 시즌 중 규정 변경으로 소위 '너프'를 여러 차례 겪었었고 RBR에 그런 일이 아예 벌어지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하기 어려우니까요(가능성이 희박해 보여서 문제지만). 지난 시즌 그나마 RBR의 맞수가 될 수 있어 보였던 페라리가 자멸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시즌 초반을 불안하게 시작하는 점, 아스톤 마틴이 빨라지긴 했지만 안정적이라 보긴 어려운 점, 메르세데스가 회복세(?)에 있다고는 하나 예산제한 규정을 고려하면 따라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등을 고려하면 특단의 조치 없이는 RBR의 시즌 초반 강세가 끝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페라리보다 더 불안하게 시작한 팀은 맥라렌인데 이쪽은 챔피언십 우승이라는 대업을 노리기에는 지난 시즌에도 상태가 썩 좋진 않았어서 ...
모두의 테스트베드인 까딸루냐 서킷(=스페인 GP 개최지)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고, 다음 그랑프리는 멜번의 알버트 파크에서 열립니다. 다시 마련된 2주의 시간을 팀들이 어떻게 쓸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지켜보기로 합니다 ... 뭔가 마무리가 애매한 이번 잡담입니다만 FIA 스튜어드들도 얼레벌레하게 일처리하는데 저라고 그러지 못할 건 뭔가요. :P 그리고 마침내! 좀 합리적인 시간대에서! 레이스가 열리니까요. 영암 다시 개최했으면....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