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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그랑프리 잡담/season 2021

2021-08-01 / Round 11: 헝가리 그랑프리 - 순간을 포착하는 태도

by p 2021. 8. 17.

언젠가부터 여름 방학 전 마지막 그랑프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헝가로링입니다. 추월이 어렵기로 악명높고 - 사실상 턴1 외에는 추월 포인트가 없다고 봐도 될 정도 - 날씨가 항상 변수로 작용하는 곳이지요(2006시즌 헝가리 GP가 아직도 이야깃거리가 되는 이유). 사건사고로는 2007시즌 알론소의 해밀튼 퀄리파잉 방해, 2009시즌 마싸의 퀄리파잉 도중 사고가 유명하고요. 시즌 초반에 헤매던 팀이 여기서만큼은 뭔가 좋은 결과를 보여 주는 일도 종종 벌어지는 곳이어서, 흐름 느리고 추월 어렵다는 서킷 특성과 별개로 - '울타리 없는 모나코'같은 악평도 있을 정도 - 흥미로운 곳이기도 합니다.  

여름 휴가 이후 캘린더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지도 아직 미지수인 상황인데 다음 시즌(2022년) 프리시즌 테스팅 일정이 나왔습니다. 2월 23-25일 바르셀로나(까딸루냐 서킷), 3월 11일-13일 바레인(사키르 서킷) 예정이라는데 과연 가능할지는. 개막전은 알버트 파크, 같은 것도 역병 이전의 추억이 될 것 같지요. 

여러 가지로 지난 실버스톤에서 있었던 사건사고들 여파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시작한 헝가로링 주말이었습니다. RBR의 페널티 관련 항의와 기각까지 지난 영국 GP 잡담에서 다룬 만큼 여기서는 더 덧붙이지 않을게요. RBR과 메르세데스, 베르스타펜과 해밀튼, 이들을 둘러싼 이야기들 때문에 한껏 분위기가 (부정적인 쪽으로도) 달아오른 상황만큼이나 수요일 목요일 트랙도 뜨거웠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40세 생일(!)을 맞이한 페르난도 알론소를 위해 알핀 팀에서 준비한 대대적인 생일잔치라거나 프레스컨퍼런스 도중 깜짝 생일 축하 서비스처럼 유쾌한 일도 있었고요. 선배님 생일 안 챙긴 후배님은 빨리 카드라도 써서 보냈길. :) 

RBR에서는 베르스타펜 차에 일단 금요일엔 지난 실버스톤 때 썼던 그 파워유닛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무슨 재주로 어떻게 봉인 안 뜯고 수리했는진 모르지만 그랬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그거 안전한 건 맞을까, 사고가 컸는데 혹시 영향은 없었을지 하는 걱정이 되긴 하더라고요. 아무리 느린 헝가로링이라 해도 F1 기준으로 느린 것이지(=스피드 트랩에 300km/h 안 잡히는 정도) 레이스 끝나고 평균 속력 따져 보면 200km/h 언저리는 나온단 말이에요. 

타이어 선정은 C2, C3, C4로 무난했지만 날씨 때문에 트랙 온도가 높은 만큼 - FP1에서 57도 - 그 영향이 더 커 보였습니다. FP1에서 지난 몇 GP 대비 제법 괜찮은 페이스를 보여 준 페라리들이 인상적이었고, 메르세데스들이 소프트 관리를 잘 하는 모습 보여 준 가운데 FP1 후반에 알파타우리의 츠노다 유키가 턴4에서 실수로 크래시하면서 레드 플랙 선언. 다행히 잘 수습되어 12분쯤 남은 상황에 세션 재개되었습니다만, 루키임을 감안해도 올 시즌에 차 뒷쪽을 해먹는 경우가 좀 잦은 편이라ㅡ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알파타우리 사람들은 그쪽 상태 파악이 빨라졌겠구나 싶었어요. 세션 막판에 메르세데스의 루이스 해밀튼이 개러지 나오는 길 바로 앞에 RBR의 막스 베르스타펜이 끼어드는 걸 보여 주는 중계 화면은 너무들 팝콘 뜯는 분위기라 좀 우스꽝스러웠고요. FP2 때도 트랙은 따끈따끈. 날씨가 여전한 관심사였습니다. 베텔 소프트 기록이긴 하지만 리더보드 위쪽에 이름 떠 있는 걸 보니 반갑더라고요. 작년이나 재작년 폴 기록을 생각하면 아직도 더 깎을 여지가 한참 있어 보이는 기록이었지만서도. 그 사이 츠노다 차 고쳐서 한 바퀴라도 돌려낸 알파타우리 사람들 대단했습니다. RBR 프론트 내부 구조 일부가 살짝 드러났는데 이게 또 흥미로웠던. 와중에 혼다가 엔진 출력을 낮추면서 RBR(특히 베르스타펜)쪽 퍼포먼스에도 영향이 갔다는 이야기가 있어 조금 갸웃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엔진 써도 괜찮냐의 문제. RBR-혼다 진영에서야 당연히 쓰고 싶었겠지만요(한 시즌당 쓸 수 있는 엔진 개수가 정해져 있고 그 이상을 쓰면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이게 꽤 크지요). 그리고 금요일 밤 페라리에서는 curfew를 깨 가면서 사인스 차를 대대적으로 고칩니다(이것 깨는 건 팀마다 시즌당 두 번까지니까 마찬가지로 꽤 큰 카드). 더운데 야근했을 크루들에게 치어스. 

 

FP3 앞두고 혼다는 다시한번 베르스타펜 차 엔진을 그대로 쓸 거라는 입장을 알립니다. FP3 날씨는 전날보다는 조금 선선해져서 기온 26.6도, 트랙 온도 49.3도에서 시작. 세션 중반까지 보타스가 페이스 리드하는 가운데 베르스타펜 p2, 해밀튼 p3라는 기출변형적 모습 보였으나 윌리엄스의 니콜라스 라티피가 p7(!)을 기록하며 이변 가능성을 살짝 비쳤습니다. 후반에 하스의 믹 슈마허가 턴11에서 컨트롤 잃고 방호벽에 부딪히는 바람에 레드 플랙 선언, 드라이버는 별 일 없었지만 역시 이번 시즌 사고가 너무 잦다는 느낌이지요. 레드 플랙 해제 이후 드라이버들이 남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 트랙으로 바삐 나가다가 피트레인에서 아스톤 마틴의 랜스 스트롤 - 알파 로메오의 안토니오 지오비나치가 부딪힐 뻔 하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고요. 그래도 FP3 최종 기록은 올 시즌 내내 보다시피한 패턴과 큰 차이 없이 일단 마무리되었습니다. 

퀄리파잉 세션 앞두고 날이 개면서 다시 FP2때 비슷하게 트랙 온도가 올랐습니다. Q1 초반은 다들 소프트로 시작, 기록도 1분 17초대 후반까지 당겨졌지만 큰 의미는 없는 상황이었고요. 뜨거운 노면 감안해 타이어 퍼포먼스를 어떻게 최대한 뽑아낼지가 관건이었다고 생각해요. 메르세데스 첫 기록이 꽤 좋은 편인데도 두 드라이버 모두 한 번 더 내보냈던 걸 보면 뭔가 뽑아야 할 데이터가 있었던 걸까 싶기도 합니다. 윌리엄스는 최근에 반짝 했던 게 머쓱하게 두 드라이버 모두 Q2 진출 실패. 조지 러셀의 경우 최근 띄워주는 분위기가 상당했던 만큼 조금은 타격 있었을지도요. 


Q2에서는 모두의 예상대로(?) RBR과 메르세데스 모두 미디움으로. Q2 타이어 규칙이 생기는 바람에 레이스 때 타이어 전략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해져 버린 건 확실히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페라리에서 샤를 르클레르가 1분 16초 725로 p2 기록한 그 즈음 사인스가 마지막 코너에서 실수하며 크래시, 또 레드 플랙이 선언되는데 기록 괜찮아 보이던 상황이었어서 아쉬웠어요. 6분 40초 남기고 세션 재개, RBR에서 두 드라이버 모두 새 소프트로 기록을 내면서 레이스 스타트에 변수가 생겼습니다. 메르세데스는 미디움으로 넘겼거든요.


Q3 막판은 피트레인에서부터 시작된 기싸움이 재미있었고 - 각자 트랙 포지션 잡기 위한 눈치 싸움 끝에 RBR의 세르히오 페레스는 시간 안에 스타트/피니시 라인 통과에 실패. Q3 2차 시도 타이밍 잡기 까다로운 것은 당연하지만(다들 더티 에어 싫어서 눈치 보니까요), 아스톤 마틴의 베텔이 혼자 기록 내고 있을 때 바로 메르세데스보다 먼저 내보냈다면 RBR쪽이 더 좋은 결과 거두었을 수도 있었겠어요. 2019년 이탈리아 GP를 겪고도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팀과 드라이버들이 꽤 있는 것 같지요. 어쨌거나 그리드 앞쪽은 메르세데스 1-2, RBR 3-4위라는 '예상은 했지만 또 그럴 줄은 몰랐던' 순위로 마무리됩니다. 폴 포지션은 루이스 해밀튼. F1 커리어 통산 101회째네요(올해의 그 실버스톤 금요일을 넣는다면 102회). 

 


한편 헝가로링은 워낙 스타트 때 클린 사이드/더티 사이드 차이가 크기로 유명한 곳이라, p9~12 구간에 들어간 드라이버들과 팀들 입장에선 머리 굴려 볼 여지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 칸 차이는 상당하지만, 그것보단 어느 쪽에 자리잡느냐가 저곳에서만큼은 더 중요할 수 있거든요. 물론 앞쪽 그리드가 좋지만 서포트 레이스 치르면서 트랙에 러버 더 깔린다 해도 홀수 번호 그리드가 짝수 쪽보다 스타트에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 될 정도인 만큼, 타이어 못 고르는 p10보단 차라리 p11 쪽이 뭐라도 더 해 볼 여지가 있는 셈. 아무리 드럽게 추월이 안 나오는 곳이라 해도 날씨 때문에 의외로 변수는 꽤 있는 곳이라는 게 헝가로링의 포인트- 고 정말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퀄리파잉 세션 후 베르스타펜 엔진에 크랙이 발생한 걸 발견해 혼다에서 레이스 당일 아침에 엔진 교체를 알렸습니다. 같은 스펙 엔진이기 때문에 그리드 페널티는 없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스타트 20여 분 전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인데요. 오락가락 날씨 정도를 예상했는데 비가 꽤 많이 내리면서 모두가 인터미디엇 타이어를 장착합니다. 미디움이냐 소프트냐의 싸움을 생각할 때가 아닌 거죠. 작년 헝가로링처럼 포메이션 랩 끝나자마자 슬릭으로 갈아신으러 뛰쳐들어가는 드라이버들이 나올까 궁금해하는 사이 포메이션 랩 시작. 포메이션 랩 끝에 알파 로메오의 지오비나치가 피트인하면서 시작부터 타이어 도박을 거는 드라이버가 나오나 했는데 - 스타트에서 대형 사고가 이어지면서 첫 랩부터 세이프티 카가 나왔어요. 메르세데스의 보타스가 키였는데, 리플레이 보기 전에는 왜 그렇게까지 미끄러졌나 싶었을 정도. 맥라렌의 란도 노리스와 다니엘 리카도 모두 스타트 좋았지만 보타스, 베르스타펜과 엉키면서 첫 코너 난장판의 희생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RBR에서 베르스타펜 차의 바지보드 대미지와 오른쪽 손상을 알린 사이 레드 플랙 선언. 과연 레드 플랙 상황에서 교체나 수리가 가능할지 의문이었던 가운데 리플레이를 다시 봐도 첫 랩 컨택이 어쩌다 그렇게까지 커졌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메르세데스의 보타스뿐 아니라 맥라렌의 노리스, RBR의 페레스도 리타이어 결정. 첫 코너 사건사고에 가려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가 덜 갔지만 아스톤 마틴의 랜스 스트롤 -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르 사고도 사이드가 그대로 찍히다시피 해서 꽤 컸습니다.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르클레르와 페라리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었겠어요. 그나저나 비 때문에 이 난리가 났는데 레드 플랙 해제될 즈음에는 또 비가 그치고 해가 나려는 날씨였다는 게 환장 포인트... 이게 헝가로링 날씨죠. 

그래서 인터미디엇에서 슬릭으로 누가 제일 먼저 가느냐 - 를 고민하는 사이 레이스 재개, L4/70 해밀튼 빼고 전원 슬릭 도박이라는 놀라운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 잡담 정리하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게, 레이스엔 정말 많은 요소와 변수들이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피트박스 위치. 헝가로링 피트레인 입구 기준으로 메르세데스 개러지가 첫 번째, 출구 기준으로 보면 맨 끝에 있습니다. 만약에 해밀튼을 불러들였는데 다른 집들도 다 들어온다? 피트레인 트래픽 피하기 힘들죠. 아무도 안 들어오는데 해밀튼만 들어왔을 때의 리스크는 말할 것도 없고요. 트랙 컨디션 제일 먼저/정확히 파악 가능한 쪽은 드라이버여도 레이스 흐름 차원에서는 또 다를 수 있지요. 보수적인 판단 한 번(L5/70), 드라이버 믿고 걸어 보기 한 번(L48/70), 세꼭지별은 이 레이스에서 가진 카드들을 최대한 써 본 셈이라고 봅니다. 

 

L5/70 해밀튼 핏, 2.2초 미디움, 이제부터 어떻게 될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알핀의 에스테반 오콘이 레이스 리드. L12/70 시점 2위는 아스톤 마틴의 베텔, 3위가 윌리엄스의 라티피(!) 라는 대단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 실버스톤의 스프린트 퀄리파잉도 제공하지 못한 놀라운 순위 변화. 헝가로링의 추월 난이도를 생각하면 이대로 끝까지 달리면 오콘이나 베텔 둘 중 하나가 우승할 상황이었죠. L20/70 해밀튼이 핏, 2.4초 하드. 타이어 교체와 함께 까다로운 상대인 맥라렌의 리카도와 RBR의 베르스타펜 모두를 제치고 앞으로 나오는 데 성공합니다(이 두 드라이버는 L21/70에 핏했으므로). 곧바로 패스티스트 랩 기록하며 달리는 해밀튼을 보면서 이러니 세꼭지별이 드라이버 믿고 무리한 결정 한단 소리 듣는구나 싶었어요. 페라리에서 피트인하라는데 팀라디오로 격렬히 저항하던 사인스에게는 그저 묵념. 

L27/70, 하스의 슈마허가 의외의 기차놀이 차장 역할을 소화합니다(이후 대략 L35/70까지). 그리고 좀 전 해밀튼이 시도해 성공한 언더컷이 정말 중요했던 게, 이 시점까지도 베르스타펜이 리카도 뒤에 붙잡혀 있었거든요. 리카도 뒤에 잡히면 최소 20랩이고 헝가로링 같은 곳에선 더 길어질 수도 있죠. 리카도는 변칙적인 추월로 호평을 받는 드라이버입니다만 전 그보다 철벽에 가까운 방어로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레이스에서도 단순 계산으로 40랩 이상 베르스타펜을 뒤에 붙잡아 두고 있었으니까요(30+랩 하드의 맥라렌으로 10+랩 미디움 신은 RBR을 막았다고요). 

핏스톱 없이 버틴 알핀의 알론소가 L38/70에서 레이스 리드. 오콘도 베텔 앞으로 나오는 데 성공하면서 포지션을 지킵니다. L40/70 알론소 핏, L45/70까지도 해밀튼은 타이어 관리 잘 하며 달리고 있었지만 - 그 타이어로 그 랩타임 - 한 번 더 핏스톱 가져가지 않고 끝까지 달리기는 다소 도박같았어요. 페라리의 사인스 차 더티 에어 뒤집어쓰며 달릴 간격인 것치고는 페이스 나쁘지 않았지만, 들어갔다 나오면 알론소 뒤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 이것도 어려웠죠. 알론소가 절대로 쉽게 비켜줄 리 없으니까 - 라고 생각하던 사이 해밀튼 핏, 2스톱 갑니다. L48/70 2.3 미디움. 보노의 팀라디오 나오자마자 서킷의 다른 모든 차들보다 4초 가까이, 어쩌면 그 이상 앞서는 기록을 내더라고요. 아무리 새 미디움에 클린 에어 상황이라 해도 남들 1분 22-23초대 찍고 있을 때 1분 18초 715. 네 대 추월하면 우승이라고 침착하게 팀라디오를 보내는 보노 ... 맞는 말이긴 했지만요. 해밀튼에서 레이스 리더까지 간격은 11초 681. 

 

이게 다 무슨 일이냐 (*그래프에 알론소가 없어 아쉽습니다)

이어서 이 레이스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L55/70에서부터 약 10랩에 걸쳐 이어진 해밀튼 vs 알론소 배틀이 펼쳐집니다. 인으로 오는 해밀튼을 막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아웃에서 알론소를 추월하기는 정말 어렵죠. 공격하는 쪽이나 방어하는 쪽이나 수준이 다르다는 걸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배틀하면서도 사고가 안 났으니까요! L65/70 알론소가 휠 록 걸린 사이 해밀튼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p4를 가져갑니다. 사실상 5랩 남기고 앞에 세 대 남긴 상황. L67/70 사인스를 추월하며 해밀튼 p3, 그러나 알론소가 앞서 철벽방어를 해 준 덕택에 오콘은 상대적으로 안전했어요. p2 베텔이 조금 더 밀어붙여 보기엔 레이스 후반이었고, p2-p3 갭이 마지막 랩에 2초대까지 줄었기 때문에 앞서 알론소와의 배틀이 조금만 짧았더라도 이 레이스는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었겠더라고요. 체커드 플랙, 오콘 우승, p2 베텔, p3 해밀튼. 알랭 프로스트 이후 처음으로 프랑스 국적 팀의 프랑스 드라이버가 우승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윌리엄스는 더블 포인트 피니시 성공! :) 

고생했던 드라이버들이 포디움 가서 다행이다 싶은 것과 별개로 일찍 퇴근한 드라이버들에 대한 아쉬움도 남고 .... 여러 차례 이야기한 것처럼 날씨가 최대 변수기는 했네요. 올 시즌 알핀이 우승을 가져간다 - 라면 혹시 모르니까 정도로 생각했을 사람들도 그 주인공이 알론소가 아니라 오콘일 거라고는 예상 못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이변의 땅 헝가로링. 알론소의 불혹 맞이 생일잔치를 그렇게 거창하게 챙긴 데엔 다 이유가 있었나봅니다... 오콘 우승은 사실상 알론소가 75%는 만들어 준 거죠. 간만에 멋진 배틀들도 보았고요. 챔피언의 클래스는 영원하다. 무엇보다 뒤에 베텔을 두고 실수 없었던 점에서 오콘은 이후로 더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 같습니다. 

해밀튼은 정말 미친듯이 밀어붙이는 것 같더니 레이스 끝나고 컨디션 안 좋은 게 눈에 띌 정도더라고요. 많이들 한 이야기겠지만 해밀튼이 알론소에 그리 오래 막히지 않았다면 포디움 순서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치열하게 자리싸움해도 사고 안 난 건 전적으로 두 드라이버 모두 굉장한 드라이버들이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베르스타펜보다 앞이니까 이대로 피니시하자, 가 아니라 끝까지 포기 없이 밀어붙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고요. 101폴에 이어 100승, 헝가로링 9승, 이렇게 시작 전부터 hype 많았어서 쉽지 않을 거란 예상은 했지만 - 호사다마 어느 정도 적용되는 동네니까요 - 그래도 레드 플랙 이후 리스타트에서 타이어 선택 때문에 꼬인 것치고는 괜찮은 결과였다고 생각해요. 한 대는 리타이어한 마당에 무조건 베르스타펜보다 멀찌감치 앞서 피니시해야 하는 상황 - 헝가로링 직전과 지금의 챔피언십 상황을 보세요 - 에서 전략적 도박 가기 쉽지 않은데 드라이버 믿고 지른 피트월도 굉장하긴 합니다. 지금 시점 F1에서 메르세데스 말고 이 짓 할 수 있는 팀이 또 있을까 싶네요. 

베텔의 레이스 운영도 아스톤 마틴 레벨에서 가능했던 최대 아웃풋이었다 생각하기에 오랜만의 포디움 반가웠습니다. 트랙에 차 세울 때 어 연료 괜찮나...? 싶긴 했는데 그게 정말로 큰 문제가 될 거라고는.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포디움이 그렇게 날아갔네요. 연료 샘플 제출 미달로 실격 처분(팀에서 항의를 해 보기는 했습니다만 사실상 뒤집기 어려운 문제라 DSQ 확정되었습니다). 사인스는 약간 앞뒤 상황상 이득 본 느낌. 그래도 놓치지 않고 자기 몫 가져가는 건 중요하지요. 그래도 페라리의 그 순위 상승 알림 메시지는 별로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름 정도는 부르는 예의를 갖추었으면. 

 

RBR은 역시 RBR입니다. 차 절반이 날아가다시피해도 완주해서 포인트피니시 가능한 레벨의 차를 만들어 왔네요. 두 그랑프리 연속 포디움 피니시 실패는 팀 입장에서 꽤 타격일 텐데 워낙 잘 하는 집이니 - 그리고 올해 경쟁력은 이미 증명되었으니 - 하반기에는 더더욱 날카롭게 벼려 오지 싶습니다. 


맥라렌에 대해서는 할 말 많은데... 일단은 그 첫 랩 사고에서 드라이버 하나는 퇴근, 하나는 상당한 대미지 입은 상황에 할 수 있는 최선은 했다고 생각해요.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지만, 뭐 그것도 레이스의 일부겠죠. 차 간격들이 안 좋았던 것치고는 잘 버텼습니다. 그러나 하반기엔 좀 더 잘 했으면 싶고요. 리카도 결과가 좀 아쉬웠는데 그건 상황이 안 좋았던 거였어서, 가능했던 최선을 내는 데에 집중한 레이스였다고 생각해요(스타트가 좋았던 만큼 드라이버 본인이 무척 아쉬웠겠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버티는 것 그 이상을 원합니다.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지금의 맥라렌도. 

맥라렌, 메르세데스, 페라리, RBR, 아스톤 마틴까지 한 드라이버씩 조퇴한 마당이라 윌리엄스에겐 천금의 기회였고 잘 잡았습니다(둘 다 포인트피니시!). 러셀의 중간중간 팀라디오는 메르세데스 면접 준비인가 싶었지만(*농담). 라티피도 그냥 돈줄만은 아니라는 증명을 간만에.

팀이 드라이버를 믿고 전략적 주사위 던져 볼 수 있는 것과, 드라이버가 팀을 믿고 걸어 볼 수 있는 건 비슷해보여도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일단 두 가지 다 차량 성능이 받쳐준다는 대전제가 필요한데 그렇지 않을 경우가 이제부터 좀 빡세죠. 어느 집이든 아무래도 변수 줄이기 차원에서 차 하나(+드라이버)를 먼저 챙기게 되는 경향은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만 한 팀에 차는 두 대죠 ... 그래서 까다로워집니다. 한 대가 리타이어하면 그때부턴 가능한 선택지들이 확 줄어들고, 여기에 차 성능까지 덜하다면 정말 골치아파집니다. 드라이버 의존도가 높다는 건 그 드라이버에 대한 기대치가 있는 만큼 실망도 커질 수 있단 뜻이기도 해서.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사소한 팩터들이 쌓여 결과값이 크게/갑자기 달라질 수 있는 게 - 그게 거의 곧바로 보이는 게 - 탈것경주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실버스톤이 올 시즌 챔피언십 경쟁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거라/됐다 생각하는데 헝가로링도 꽤나 그런 역할을 하게 되지 싶어요. 분위기라는 것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단순히 어느 집의 누가 리드 가져가냐, 정도가 아니라 중위권이나 하위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맥라렌이랑 페라리는 뭐 거의 영혼의 쌍둥이 모든데 둘 다 정신 차려야 하고 -_-; 아스톤 마틴하고 알핀, 특히 알핀 쪽 분위기가 좋아질 것 같아요. 포인트피니시에 성공한 윌리엄스는 당연하고요. 

어쨌거나 이 사건사고 속에 메르세데스가 기어이 다시 챔피언십 리드를 되가져갑니다. 이제 4주간의 휴식 기간 aka 여름방학인데 팀들 다들 바쁘겠어요. 팩토리 2주 의무 폐쇄 규정이 있긴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다들 하반기(뿐만 아니라 멀리 보는 집들은 내년까지도) 착실하게 준비해 오겠지요. 여러모로 흥미로운 벨기에 그랑프리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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