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2023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개막전 바로 전 주 딱 사흘만 진행된 프리시즌테스팅에서부터 예상된 레드불 레이싱(RBR) 우세는 예상대로였어요. 아스톤 마틴이 페라리나 메르세데스보다 앞서거나 그에 준할 것이라는 예상도 단순한 분위기 띄우기 수준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한 첫 레이스 주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상위권 격차가 눈에 띄게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 오히려 RBR 리드는 더 벌어진 느낌 - 어쨌거나 중하위권 경쟁은 제법 엎치락뒤치락했다는 점에선 아주 약간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볼 수 있었을지도요. 어쩐지 씁쓸한 톤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 같다면, 네 맞아요, 제가 오랫동안 지켜본 팀이 그 '순위 흘러내린 집' 중 하나이기 때문도 있습니다.
기록들 붙여 놓고 시작할게요.
금요일에 한껏 기대치를 높인 아스톤 마틴. 아스톤 마틴 차들이 올해 정말 빠른 건지, 페르난도 알론소가 그냥 빠른 건지는 이 때까지만 해도 아직 흥미로운 화젯거리 A 수준이었다는 인상이었어요. 그보다는 자전거 타다 시즌 시작 직전에 사고로 손목을 다친 바람에 테스팅에 불참했던 랜스 스트롤의 컨디션을 - 그리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 걱정했던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제 트위터 타임라인의 편향일 수도 있지만요. 드라이버 컨디션은 당사자에게는 당연하고, 넓게 보자면 다른 드라이버와 트랙 주변 마샬들 안전에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여서요.
영 불안정했던 메르세데스는 토요일 연습주행 때가 되자 집 나간 것 같았던 페이스를 하룻밤만에 어느 정도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지난 시즌 W13이 (사실상 시즌 중반까지)보여 준 포퍼싱 - 그라운드이펙트의 부작용으로 차가 들썩거리며 튀는 문제 - 와 (특히나 직선 구간에서의) 드래그 문제는 어느 정도 잡아냈다고 할 수 있으나 리어가 여전히 불안정해서 코너에서 드라이버들이 충분히 가/감속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그러나 여전히 p1 p2와의 격차가 있어서 단기간 내에 해결하긴 어려워 보였습니다(특히나 한 주말 안에는). 메르세데스에게는 쉽지 않은 - 어떻게 보면 파워유닛(엔진) '고객 팀'인 아스톤 마틴에 밀린 셈이니 최악의 - 개막 주말인 셈입니다.
페라리도 페라리 나름의 문제를 겪었죠. 대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포퍼싱 문제가 돌아왔고, 지난 시즌에 발목을 여러 차례 잡았던 신뢰성 문제가 개막전부터 나타났습니다. 설마하니 일요일에 그렇게까지 될지는 몰랐지만.
퀄리파잉 세션은 Q2가 특히 재미있었어요, 오랜만에 능력 발휘해 볼 만 한 빠른 차에 타게 된 페르난도 알론소가 폴 포지션을 가져가느냐 마느냐 할 만큼 기대했던 것도 저한테는 Q2까지였어서요. Q3에선 개막전이라고 팀도 드라이버도 전반적으로 보수적으로 접근한 탓인지, 무리해서 밟아보는 맛이 없었어서 RBR들이 맨 앞줄 가져가는 게 너무 당연해 보였습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밋밋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올해 정식으로 데뷔하는 드라이버들 셋은 모두 Q2 탈락이란 결과를 맞이했는데, 팀들 사정이 사정이고 상황이 상황이었으니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한 결과였지만 그래도 좀 아쉽기도 했어요. Q1에서 맥라렌의 란도 노리스와 윌리엄스의 로건 사전트가 소수점 아래 세 자리까지 동일한 기록을 냈으나 노리스가 기록을 먼저 냈기 때문에 노리스가 Q2 문을 닫고 진출했다는 웃기고 슬픈 에피소드도 생겼네요. Q1에서 뭔가 부품을 떨어뜨리며 레드 플랙까지 잠시 소환했던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르는 Q3 p3까지 올라갔지만 어쩐지 불안한 기운을 남기며 세션을 마무리했습니다.
RBR 제외 다른 모든 팀들에게 쉽지 않은 일요일이 될 것 같다는 예감과 함께 일요일, 시차를 고려하면 한국에선 월요일로 넘어가는 자정을 기다렸는데 - 결과는 어째 영 밍숭밍숭한 레이스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나마 흥미로운 점이었다면 메르세데스의 루이스 해밀튼과 아스톤 마틴의 페르난도 알론소의 휠 투 휠 대결, 그리고 알론소가 포디움 간 것 정도? 아, 알핀의 에스테반 오콘이 너무할 정도로 수집한 페널티들과 맥라렌의 노리스가 겪은 차량 문제, 난데없이 퍼져 버린 페라리의 르클레르 차도 있었군요. 이건 흥미롭다기보단 아쉬웠던 것들에 가깝지만요.
스타트 직후 첫 랩에서 아스톤 마틴끼리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지만 단순 접촉으로 큰 손상은 없었습니다(누구하고 부딪혔는지를 레이스 끝날 때까지 알론소한테 AM 피트월이 얘기 안 했단 이야기는 뿜김 포인트).L5/57 시점에 이미 p1 베르스타펜 - p2 르클레르 격차가 4초대에 접어들면서 밋밋한 레이스가 될 거란 불안을 키웠는데요. DRS권에 팀메이트 조지 러셀을 두고 아주 근소하게 앞선 페이스로 버티던 해밀튼과, 은근하게 팀 오더를 요구했던 러셀도 또다른 흥미로운 포인트....가 될 뻔 했습니다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역시 다툼도 차가 빨라야 재미있고 흥미롭게 펼쳐진다고 생각해요.
L18/57 시점에 이미 p1-p5 격차가 25초대를 넘겼으니 다음날(날짜 넘어간 이후니 사실상 당일) 일정을 생각하면 끄고 자러 가는 게 나은 선택일 수도 있었겠으나, 레이스는 체커드 플랙 뜰 때까지니까요, 저는 보기를 선택했고 다음날까지 고생을 조금 했습니다. 하지만 L39/57 해밀튼과 알론소의 휠투휠은 정말 흥미진진했다고요. L41/57 르클레르 차의 PU 문제로 VSC가 발령되었고 L42/57 해제 전에 중하위권 팀 드라이버들 중 타이어 교체를 결정한 드라이버들이 있어 막판까지 포인트권 경쟁은 제법 치열했습니다. F1TV Pro의 인터내셔널 피드에서 대충 보여줘서 그렇지. 그렇게 체커드 플랙, 포디움은 베르스타펜, 페레스, 알론소. 패스티스트 랩은 p9로 피니시한 알핀의 피에르 가슬리...일 뻔 했습니다만 마지막 순간에 p16에서 알파 로메오의 저우관위가 패스티스트 랩을 기록하면서 추가 포인트 없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피렐리에서 소프트-하드-소프트가 가장 빠를 것이라 예측했으나 팀들의 선택과 최종 결과를 확인해 보니 타이어 관리가 잘 되었던 RBR과 아스톤 마틴 모두 다른 전략을 가져갔습니다(RBR은 소프트 소프트 하드, AM에선 소프트 하드 하드).타이어 잡아먹기로 유명한 사키르 서킷에서 헌 소프트를 두 번 가져간 RBR 약간 차량 성능을 믿고 걸어 본 승률 높은 도박이었지 싶어요. 이번 하드(C1) 컴파운드가 지난해의 하드-미디움 사이 정도 느낌이던데 차량 문제로 많은 핏스톱을 해야만 했던 노리스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미디움을 안 쓴 걸 봐서는 달라진 타이어도 전략에 영향을 미쳤다고 추측합니다. 언더컷에 성공하고도 페이스 격차에 밀린 메르세데스의 해밀튼은 좀 아쉽게 되었네요. 다들 기대하는 바가 컸을 텐데요(저 포함).
해밀튼 p5 결과는 지난 시즌 개막전에도 앞에 두 대 퍼지면서 p3 되었었던 걸 고려하면 메르세데스에겐 제자리인 셈입니다. 트랙-한정적인 문제였으면 좋겠지만 그저 차는 덜 까다로우면서 빠르고 신뢰도가 높아야 좋은 차라고 생각서요, 까다로움 측면에선 올해의 W14가 지난해 W13하고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페라리의 F1-75는 차 한 대가 퍼졌고 다른 한 차는 W14하고 비등비등한 페이스를 보였으니 이쪽도 만만찮게 후진한 셈이 되네요. 물론 맥라렌 MCL60이 제일 문제지만. 맥라렌은 약간 개막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악몽같은 일은 다 겪어 본 것 같은 주말을 보냈다고 봐요. 연습주행부터 애매했고 퀄리파잉 세션은 말았으며 레이스에서는 이하 생략. 그래도 안 접고 끝의 끝까지 달려본 건 대단하다 생각합니다, 좋은 자세죠. 그런데 결과도 좀 더 좋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피아스트리는 지난해 계약 문제로 벌어진 난장판 끝에 데뷔한 바람에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었는데 - 게다가 '맥라렌 루키'들에겐 늘 기대값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누구 이후로 - 뭐 제대로 보여줄 것도 없이 차량 문제로 리타이어하게 되어 아쉽습니다. 데뷔GP 액땜이겠거니 합시다. 앞으로 갈 길이 한참인/한참일 드라이버니.
어쩌면 모나코 GP쯤 되기 전에 예산제한규정 어긴 팀(들)에 대한 페널티가 충분하지 않단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2021시즌 도입된 예산제한규정을 어긴 팀이 RBR하고 아스톤 마틴 둘이었고, 위반이 공식 확인된 게 2022시즌 10월이었죠. 2022시즌 지출 문제는 좀 더 빨리 처리할 거라 하지만 어떻게 될지..... 지난해 대비 눈에 띄게 성능 좋아진 팀이 어떻게 딱 그 둘인 바람에 ... 차량 개발에 드는 시간이나 비용을 생각하면 분명 말 나올 만 한 부분같습니다. 개막전 하나만 보고 이야기하긴 다소 성급할 수도 있겠으나, RBR의 경우 시즌 중 개발에는 어느 정도 제한을 받겠지만 이 정도로 앞서나가고 있다면 그게 과연 '페널티'로 작동할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울 정도여서요. 이전처럼 시즌 중 (기술)규정변경이나 제한이 생길 거라는 기대도 딱히 없어서 그런지, 자칫하다간 예산제한 도입 취지 자체가 무색해질 수도 있다고 봐요. 들킬 때까지 쓰고 페널티를 감수한다는 식으로 나오면 무용지물 되지 싶습니다만. 가뜩이나 F1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핑계 대기와 남 탓의 일반화를 바닥재로 깔고 시작하는 것 같기 때문에 더더욱요.
원래 지루한 그랑프리도 있게 마련이라 하나, 늦은 시간까지 깨어서 볼 정도라면 그에 상응하는 재미를 기대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이 글을 두드리고 있는 수요일 저녁-밤인 지금은 또 레이스 보고 싶어 상태가 되어 있지만서도.
다음 GP는 한 주 쉬고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립니다. 그곳도 바레인만큼이나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인데 어떻게 될지. 다다음 주에 좀 더 꼼꼼하게 챙겨서 또 두드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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