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재미는 없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었군요. 헝가로링같은 날씨 변수도 없었던 까딸루냐였습니다.
8월의 바르셀로나 하면 말만으로도 해가 뜨거울 것 같은데요. 그 실버스톤을 겪으며 타이어 난리가 나나 했더니 막상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들을 보인 걸로 봐서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F1 팀들이구나 싶어요. 근 십 년 이상 시즌 전 테스팅 장소로 쓰였던 까딸루냐 서킷이니만큼, 예의 4월 말-5월 초가 아닌 8월 중순으로 개최 일정이 바뀐 것 빼고는 별다른 사건은 없을 걸로 예상했고 상당 부분 그렇게 흘러간 그랑프리였습니다.
먼저 기록들부터.



서킷 구조상 파워 유닛 출력이나 다운포스 어느 한쪽에 따른 큰 영향을 받기보다는 전체적인 밸런스에 좌우되는 곳이고요 - 괜히 프리시즌 테스팅 장소로 애용되었겠습니까 - 그렇다 보니 메르세데스 우세가 당연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GP 주말이 시작되었네요. 그나마 재미있는 포인트라면 까딸루냐 서킷의 고속 코너는 전부 오른쪽 방향이고, 저속 코너는 죄 왼쪽 방향이라 차 오른편이랑 왼편 셋업을 달리 하기도 한다는 것...? 실제로 얼마나 차이를 주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아무 팀이든 시즌 끝나면 데이터 좀 열어주었으면.
올 시즌 메르세데스가 가져온 차 W11(*풀 네임은 "Mercedes-AMG F1 W11 EQ Performance")은 뜨거울 때 빼고는 타 팀 대비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메르세데스의 팀 프린시펄 토토 볼프는 레이스 들어가면 레드불레이싱이 더 빠를 것 같다며 예전에도 종종 보였던 엄살 모드를 스위치 온 했으나 저를 포함해 많이들 안 믿는 분위기. 그도 그럴 것이 연습주행 때부터 페이스 우세가 뚜렷했어서요. 연습주행 세번째 세션 들어 격차가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많이들 메르세데스 프론트 로를 예상했고, 아니나다를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퀄리파잉 세션 Q3에서 생각보다 기록이 많이 당겨지지 않은 점은 흥미로웠어요. Q2까지만 해도 발테리 보타스든 루이스 해밀튼이든 둘 중 하나가 작년 보타스가 세운 트랙 레코드(1:15.406)보다 좋은 기록을 새로 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트랙 온도가 너무 높아서였는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윌리엄스의 조지 러셀은 알파 로메오의 키미 라이코넨에 밀려 Q2 진출 실패. 그 차로도 꾸준히 Q2 올라가고 있었기에 약간 아쉬웠습니다. 페라리는 세바스티안 베텔 차 섀시를 교체하는 강수를 두었음에도 0.002초 차로 Q3 진출 실패... 저쯤 되면 페라리는 무엇이 문제일까 싶네요. 맥라렌에서는 홈 그랑프리를 맞이한 까를로스 사인스가 7위로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기록. 반면 올 시즌 들어 팀메이트보다 꾸준히 좋은 퀄리파잉 성적을 보이던 란도 노리스가 8위를 기록한 건 러셀의 Q2 진출 실패와 마찬가지로 아쉬운 부분입니다.
폴 포지션은 메르세데스의 해밀튼입니다. 커리어 92회째네요. Q3에선 보타스가 섹터 1, 2 퍼플을 띄우며 폴 가져가나 했는데 섹터 3에서 얼마나 깎았는지 0.059초 차로 p1 가져가는 건 과연 밥 먹고 폴만 딴 듯한 그남다운 드라이빙...;

레이스 직전 기온 30도 트랙 온도 49도, 아지랑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끈따끈한 까딸루냐 서킷입니다. 비 안 오는 버전의 세팡이 되기에는 서킷 구조상 좀... 섹터 1, 2는 재미있는 편이지만 섹터 3 같은 경우엔 있던 재미도 날아갈 것같은 ... 그런 구조라서요. 그래도 같은 날 Moto2, MotoGP 레이스에서 큰 사고들이 있었다 보니 그저 안전운전만을 바라며 중계를 보게 되었어요.
레이스 스타트 전 "End Racism" 캠페인 꼬라지를 보고 있으면 야마가 돕니다. 하려면 똑바로 해야지 지금 대체 몇 주째, 이제 몇 달 째 저런 꼴을 보이고 있는 걸 보면 혈압이 ... 알아서들 잘 하길 바라기엔 이젠 좀 늦은 것 같죠. 그런 답답함을 안고 레이스 스타트.
타이어는 p10까지 모두 소프트, p11 베텔 필두로 그리드 뒤쪽에서는 미디움으로 스타트하는 드라이버들이 좀 있었습니다. 해밀튼이 깔끔한 스타트로 앞서 나간 한편, 보타스는 턴1에서 짜고 나가는 RBR의 베르스타펜과 레이싱포인트 드라이버들에게 밀리는 바람에 초반 고생을 좀 했네요. 맥라렌의 란도 노리스도 마찬가지. 첫 랩에서는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을 안고 가야 하는데 - 특히나 중위권이라면요 - 너무 방어적인 드라이빙을 했는지 요새 종종 밀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후반에 페이스 올려 따라잡는다 해도 역시 초반에 밀리면 보기에 좀 안타깝지요.
66랩짜리 레이스에서 8랩쯤부터 강렬한 프리시즌테스팅의 추억이 찾아오며 모두모두 100바퀴쯤 돌고 알아서 들어갈 것 같은 ... 진한 노잼의 기운이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도 이렇다 할 만한 추월이 당장은 벌어질 것같지 않았고요. 해밀튼은 레이스 리더의 이점을 살려 전반적인 페이스 - 멘탈을 포함한 - 를 조정하며 달리는 모양이더라고요. L10에서 1.5 언저리였던 p1-p2 갭이 L15에서 3.620으로 늘어난 것이라든지.
L38/66, 섹터 3 - 턴 14-15쯤에서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르 차가 휙 돌아 멈추면서 잠시 옐로 플랙이 선언되었습니다. 잠깐 파워유닛이 꺼졌던 모양인데 대체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출력이 돌아와 일단 트랙으로 복귀해 피트인했으나 문제 해결이 그 잠깐 사이에 될 리가 있나요. 그대로 퇴근.

피렐리의 예측은 그저 예측이었을 뿐.... 그 와중에도 의아한 타이어 전략을 쓴 팀이 좀 있었습니다. L18/66 RBR의 알본 핏, 하드로 갈아신었는데 언더컷을 노렸다기엔 아무도 들어갈 낌새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이상하다 싶었고요. 1스톱을 가기엔 너무 이르고, 2스톱을 가기엔 또 두번째 핏스톱을 너무 일찍 가져갔지요. 가장 이상한 케이스는 페라리의 베텔입니다. 새 미디움보다 헌 소프트를 더 오래 쓰고 그 와중에 그걸로 또 1스톱 피니시.;; 순위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기엔 그 와중에 그래도 드라이버가 최선을 다해 뽑아낸 결과라고 보는 쪽이 맞지 싶어요. 중계에 송출된 팀 라디오 일부만 들어 봐도 지금 이 팀 대체 생각이라는 걸 하고는 있나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한편 메르세데스는 해밀튼 두 번째 핏 때 소프트를 준비했다가, 미디움으로 바꾸어 준비해 갈아신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는 그 실버스톤 이후 타이어 선택을 더 보수적으로 잡은 걸까 했는데 드라이버 요청이었다고 하데요. 갈아신자마자 섹터 3 퍼플이니 더 덧붙일 말도 없겠더라고요.
피트 스톱 이야기가 나온 김에: RBR이 1.8초 찍을 때 4.3(해밀튼), 3.1(보타스) 찍는 메르세데스 크루 여러분들 너무합니다....? 제일 너무한 건 2.8 찍는 맥라렌이고요. 4.3 찍혀도 리드 유지 가능한 그런 상황 아니면 좀 더 노력을 해주셨으면 하는 팀 팬의 바람 ...

레이스 보면서 중간중간 현 시점 1-10위 드라이버 정리 트윗도 할 필요가 없다시피할 만큼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할 일이 없던 레이스였습니다. 와중에 기어이 4위 이하의 모든 드라이버들을 백마커로 만들어버린 레이스 리더. p3-p4 인터벌도 너무나 광활하여 보타스가 마지막 랩에 핏해 패스티스트 랩 기록을 노려도 포디움 피니시에 문제가 없었네요. 1분 18초 183, 새 레이스 랩 레코드.

다소 특수한 환경이었던 레드불링이나 헝가로링을 지나 비교적 클래식한 실버스톤을 거쳐, 벤치마크 트랙에 가까운 까딸루냐 서킷까지 왔습니다. 이 정도 포인트 격차라면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 1, 2위 팀은 거의 확정이 된 셈인데 3~5위는 팽팽하겠군요. 포디움이 어느 팀과 어느 팀의 예약석처럼 보이는 요즈음입니다만, 다음 그랑프리는 벨기에입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스파-프랑코샹에서 열리지요. 이어지는 몬차와 무젤로 트리플 헤더가 또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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