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그랑프리 잡담/season 2020

2020-07-12 / Round 02: 스티리아 그랑프리 - 그래도 결국에는

p 2020. 7. 13. 00:37

 

그리고 바로 그 파이널 랩

 

2020시즌 두 번째 그랑프리는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레드불 링에서 열렸습니다. 오스트리아 GP지만 이름은 다르게, 그러면서 해시태그는 또 #AustrianGP를 쓰기로 한 것만 봐도 - 그리고 일기예보를 고려할 때 - 혼돈의 GP가 될 걸 미리 예상했어야 했나봐요.

 

개막전이야 프리프랙티스부터 모두 중계 보며 라이브타이밍 켜고 확인했지만, 생업이 있는 사람답게 금요일의 연습주행 세션들은 기록만 체크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래도 꽤 재미있는 지점들이 많았어요. 일단 기록들을 보면, 이것만 봐도 최근 몇 년간을 지켜보신 분들이라면 재밌을 만한 포인트가, FP1에서 레이싱포인트의 세르히오 페레스가 1위. 

 

메르세데스의 발테리 보타스가 +0.222로 3위라는, 숫자로는 작은 차이지만 바로 지난주 우승자임을 감안하면 왜 저기에? 스러운 기록입니다. FP2도 마찬가지인데요. 메르세데스의 루이스 해밀튼이 +0.688로 6위를 기록했고, 마찬가지로 지난주 좋은 모습 보여주었던 맥라렌 드라이버들도 영 애매한 기록을 냈습니다. 특히나 FP2의 경우, 토요일 비 예보가 있는 상황이라 "만약 퀄리파잉 세션이 취소되고 일요일 오전에 열 수도 없게 되면 이 기록대로 스타팅그리드 결정" 얘기가 나오면서 평소같았으면 롱 런 페이스를 볼 시간에 다들 이것저것 꺼내 오느라 바빴던 모양입니다. 와중에 르노의 다니엘 리카도가 사고로 차 뒤쪽을 해먹으며 기록 없이 퇴근. 드라이버가 안 다쳐서 다행이다 싶게, 차체 손상이 꽤 심각해 보였습니다. 다행히 하룻밤새 잘 고친 모양이에요. 

 

토요일은 비가 온다더니 폭우가 쏟아져서 FP3 세션 시작이 지연되다가 결국 취소. 퀄리파잉 세션도 예정 시각을 46분 넘겨 시작되었습니다. 세이프티 카와 메디컬 카가 트랙 상태 체크하는 걸 보며 아아 역시 메르세데스 폴인가 같은 농담도 했습니다만...은 제발 퀄리파잉 세션 열리게 해 달라고 빌었던 건 안 비밀. 퀄리파잉 세션 보려고 호텔에 방 잡아놓고 노닥노닥 주말을 보낼 준비를 싹 마쳐놓은 상태였단 말입니다. 맥라렌 드라이버들 포디움 가야 된단 말이죠... 는 당연한 이야기고. 빗길 퀄리파잉 세션은 사고만 안 난다면 보기에 무척 재미있습니다. 멋지죠, 반들반들 비쳐 보이는 트랙, 타이어가 밀어내는 빗물에 차 뒤로 물보라가 피어오르고 그렇게 화살처럼 달려나가는 차들. 빗길에 250km/h 이상을 밟아대는 드라이버들은 역시 제정신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요. :) 

 

그렇게 해서, 중계 화면만 봐도 인터미디엇 타이어는 나올 일 없어 보이는 웻 컨디션에서 퀄리파잉 세션 시작. 척 봐도 피트레인 출구 열리자마자 다들 기록 찍으러 뛰쳐나올 분위기였어서, 냅다 밟는 것보단 실수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Q1 그린라이트까지 3분 가까이가 남았는데 벌써 피트레인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보니 타이어 식을까 괜한 걱정도 되더군요. 첫 플라잉 랩은 페라리의 세바스티안 베텔이 시작, 1분 24초 235가 첫 기록이었습니다. 이어 착착 기록이 쌓이고 누군가는 밀려 나가고 해밀튼이 19위까지 떨어졌다가 "Leave it to me, Bono" 한 마디와 함께 그 랩에 p1 기록을 낸다든가 ... 하는 혼돈의 Q1(다들 아시겠지만 보노는 해밀튼을 맡는 레이스엔지니어의 별명입니다, Peter "Bono" Bonnington). 트랙 상태가 시시각각 변하는지 누구도 들어갈 생각 없이 체커드 플랙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달렸어요. 드물다면 드문 일인 것이, 톱 팀 드라이버들같은 경우 어느 정도 기록을 냈다 싶으면 들어가서 다시 안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요. 다시 말하면 기록깎기 장인급 드라이버들의 기록 깎아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구경하는 아주 흥미로운 - 그리고 긴장되는 - 세션이었단 이야기도 되겠습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것: 

 

Q1에서 알파로메오의 안토니오 지오비나치가 미끄러지며 방호벽을 들이받아 차 뒤쪽을 해먹으면서 13초를 남기고 레드 플랙이 나오는 바람에 Q2 올라갈 수 있었을 것 같지만 기록을 더 줄이지 못한 여러 드라이버들이 대거 탈락했습니다(드라이 컨디션에서 진행되었던 FP1 p1 페레스가 17위로 아웃). 대신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는 팀인 윌리엄스의 조지 러셀이 12위(!) 를 기록하면서 데뷔 후 첫 Q2 진출에 성공했네요. 여러모로 이번 세션에서 제일 좋은 기록은 Q2에서 나왔습니다. Q2 → Q3 사이에 비가 더 거세졌는지 트랙 상태가 더 나빠져서 그랬겠구나 합니다. 평소라면 끽해야 한두 번 볼 톱 팀 드라이버들의 기록 내기 시도를 세션 끝날 때까지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어요. 해밀튼, 베르스타펜, 보타스의 섹터 패스티스트 핑퐁이라든지 맥라렌의 란도 노리스가 중간에 깜짝 p1으로 뛰어오른다든지...  

해밀튼 Q3 마지막 랩 대단하더군요. 폴 랩은 기록만 놓고 보면 오히려 Q1의 p1 랩보다 덜해요. 그러나 기어이 모든 섹터 패스티스트를 찍은 것도 대단했고 2위의 베르스타펜과 비교해 1.216초 앞선 기록은 이게 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그래서 기념으로 라이브타이밍 스크린샷을). 0.001초 단위까지 따지는 동네에서 1초 이상의 격차를 그것도 퀄리파잉에서 보는 건 드문 일이죠. 

 

맥라렌의 노리스가 연습주행 세션 중 옐로 플랙 상황에서 추월을 하는 바람에 3그리드 페널티를,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르가 퀄리파잉 세션 도중 다른 드라이버 방해죄(아마 알파타우리의 다닐 크비앗이었을 거예요)로 3그리드 페널티, 알파로메오의 지오비나치가 기어박스 교체로 5그리드 페널티, 하스의 로맹 그로쟝이 차 수리 문제로 파크 페르메 상태를 어겨서 피트레인 스타트. 그래도 큰 그림(?)측면에서 퀄리파잉 세션 결과와 최종 스타팅그리드 사이에 많은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무난하게 메르세데스가 리드하는 레이스가 될 줄 알았는데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완전 아니었네요.;;;; 역시 레이스는 체커드 플랙 뜰 때까지 모르는 것인가봅니다. 퀄리파잉 세션이 웻 컨디션에서 진행되는 바람에 레이스에서 타이어 컴파운드 고르는 게 자유로워져서, 설마하니 변칙적 선택을 하는 팀이 나오나 했으나 그렇지는 않았고요. 첫 랩에서 페라리 드라이버들이 엎치락뒤치락까지 갈 것도 없이 둘이 부딪혀 결국 둘 다 리타이어하는, 팀 입장에선 최악의 결과가 나왔어요. 르클레르가 너무 안쪽으로 파고들다 베텔 차 뒤쪽을 찍어버린 게 문제였는데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리어가 나갈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하자마자 세이프티 카 소환. -_-;

 

SC 해제 이후에는 메르세데스들이 날아가고, 중위권 드라이버들은 DRS 박박 당기며 따라붙는데 메르세데스가 너무 빠르더군요. 르노의 에스테반 오콘이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팀메이트 다니엘 리카도를 붙잡아두었으나 결국 추월당하는 등 곳곳에서 소소한 팀메이트 배틀은 있었습니다. RBR의 베르스타펜이 언더컷을 시도했으나 결국 메르세데스 페이스를 이길 수는 없었는지 레이스 후반에 도로 추월당하는 모습도 ... 여기까지는 으레 있는 (?) 일인데, L49/71에서 미디움 타이어를 장착한 레이싱포인트가 소프트 장착한 르노를 추월한 것같은 풍경은 올해 들어서나 보네요. 그리고 한동안 잠이 올락말락하는 ... 한 열 랩 정도를 그렇게 보낸 것 같은데, 역시 레이스는 체커드 플랙 뜰 때까지 모르는 것 +1. L68/71에서 맥라렌의 사인스가 갑자기 핏인해 타이어를 소프트로 바꾸어 끼고 나오길래 패스티스트 랩 추가 포인트를 노리겠구나 싶었습니다. 1분 5초 619로 패스티스트 랩 기록 + 레이스 랩 레코드를 경신하는 업적(?)을 한 번에 달성했고요.

 

두 그랑프리 연속으로 맥라렌 드라이버가 패스티스트 랩을 찍은 기념 스크린샷(....)

그나저나 오늘 무척 재밌었던 건 마지막 랩에 p8에서 p5까지 순위 세 칸을 단번에 끌어올린 노리스였네요. 마지막 랩에 잠 깨워 준 란도에게 ㄳ ㄳ .... 덕택에 이 메모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 

 

우승은 해밀튼, 2위 보타스, 3위 베르스타펜. 컨스트럭터스 트로피를 받으러 올라간 분은 메르세데스의 트랙사이드 플루이드 엔지니어 Stephanie Travers 님으로, 지난주에 이어 의미를 둔 인물 선정같습니다. 단체사진 찍으면 죄다 허연 남자들 투성이인 판이다보니 더요. :P 

 

아직 겨우 두 그랑프리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섣불리 판단하기 이르긴 해도, 올해 드라이버/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은 제법 흥미롭게 진행될 듯합니다. 2위와 3위는 과연 어디가 될까요? 평년과 달리 여름방학(=시즌 중 팩토리 셧다운)없이 쭉 가는 시즌이니 적절한 업데이트를 적절한 시점에 적용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 그 전에 모두의 건강과 안전부터 기원해야 하겠군요.

 

다음 주말은 (그 사이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헝가리의 헝가로링입니다. 레드불 링과는 또 트랙 특성이 매우 다른 곳이니만큼 어떨지 기대하게 되네요. 노 기대 노 실망인데도 .... 맥라렌 잘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