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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그랑프리 잡담/season 2021

2021-11-07 / Round 18: 멕시코 그랑프리 - 해발 2,200m 너머에서

by p 2021. 11. 28.

11월이지요. 시차에도 불구하고 3연전 다 챙겨 놓고서 잡담은 11월 말이 다 된 지금에나 두드립니다. 대륙을 넘나드는 3연전, 이어 중동 2연전이라는 황당한 캘린더여서 이 막바지는 모두에게 빡빡한 일정이겠어요. 전같았으면 이 즈음엔 이미 시즌 최종전이고도 남았는데, 아무리 역병 시국 영향도 있었다지만 무슨 탈것경주 달력이 12월까지 넘어갑니까. 무슨 시즌 끝나자마자 FIA 갈라 할 분위기.

아무튼, 3연전의 시작 멕시코 그랑프리입니다. 에르마노스 로드리게스 서킷은 F1 캘린더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보니 - 해발 2,200m대니까 한라산은 가볍게 넘기고 백두산이랑도 맞먹겠네요 - 지표면에 비해 공기가 희박해서, 다운포스도 줄어들고 엔진에 들어가는 공기도 상대적으로 줄어드는데다가 냉각 계통 문제도 뒤따릅니다. 사람들한테만 고산병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진 않는다는 이야기죠. 타이어 컴파운드는 C2-3-4 지정인데 어떤 분 말씀마따나 하나씩 더 띄웠으면 더 재미있었을 뻔도 했지요? 

 

엔진 계통 문제, 짧은 트랙, 까다로운 추월, 그런 것들이야 모든 팀들이 다 안고 가는 불리한 부분이라지만 그간의 경향을 고려했을 때 메르세데스보다는 레드불 레이싱이 우세할 것 같았고 - 메르세데스들 V6터보하이브리드 시대의 제왕이라 하지만 싱가포르하고 멕시코에선 유난히 헤매는 편이었죠 - 결과도 예상대로였네요. RBR도 RBR이었는데 알파타우리도 상당했거든요. 의외라면 퀄리파잉 세션 정도. 

 

메르세데스 계열 PU 쓰는 팀들은 예상대로(?) 다소 저조한 금요일 기록들로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GP 열려서인지 트랙은 연습주행 첫 세션 시작부터 먼지 폴폴, 리밋 넘겨 기록 삭제되는 드라이버들도 있었고 다들 타이어도 이것저것 섞어 가며 테스팅해보는 분위기였어요. 턴16에서 차를 해 먹는 드라이버들도 종종. 먼지 때문인지 그냥 그립이 없어서였는지 여럿이 꽤 고생했지요. FP2 때 아스톤 마틴의 제바스티안 베텔이 맥라렌 피트박스로 피트인하는(!) 재미있는 실수를 한 것 외엔 이렇다 할 특이한 일이나 사건사고는 없이 마무리되었어요. RBR하고 메르세데스까지만 1분 17초대 기록을 냈고, 이후로는 대략 p12까지 18초대. 팀별/차별 페이스는 돌아 봐야 알 것 같구나,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정도의 금요일이었습니다. 

시즌 막판답게 엔진 계통(노리스, 스트롤, 츠노다, 오콘), 기어박스(러셀) 등등 이 주말도 그리드 페널티 풍년이었습니다. 토요일 FP3에선 메르세데스들이 둘 다 셋업 손 보고 나왔던 것 같은데도 RBR의 세르히오 페레스 - 네, 오랜만에 홈 그랑프리를 맞이했지요 - 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같았어요. FP3 최고 기록 기준으로 RBR의 페레스 - 메르세데스의 루이스 해밀튼 기록이 0.651초 차였으니 상당했습니다. 막스 베르스타펜 쪽은 리어 윙 문제가 있었는지 한참을 손보고 나왔었는데도 p2 마무리. 늘 생각하지만 RBR 크루들  손 빨라요. 부럽고 탐나는 사람들. 

 

퀄리파잉 세션에서는 Q1 초-중반쯤 아스톤 마틴의 랜스 스트롤이 크래시, 프론트를 날리며 10분 58초를 남기고 레드 플랙 선언. 끝까지 컨트롤해 보려 했던 것 같은데 잘 안 된 모양입니다. 사고는 순간이죠. 레이스 디렉터 마이클 마시가 나와 사고 지점 방호벽 수리하는 걸 지켜보는 진풍경도 중계 화면에 잡혔습니다. 그 사이 RBR 사람들은 페레스와 베르스타펜 차를 더 손볼 시간을 벌었고요. 현지 시각 토요일 14시에 시작되었던 Q1은 14시 33분 재개되었고, 그 시점까지 아직 기록 내기 전인 드라이버들이 2/3에 가까웠다 보니 그린 라이트 전부터 피트레인 출구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차들이 많았습니다. Q2 막판의 지지고볶기가 Q1부터 벌어졌는데 - 알핀에서는 에스테반 오콘이 Q2 턱걸이 진출에 성공하는 한편 그 때문에 팀메이트인 페르난도 알론소가 0.326초 차로 탈락했어요. Q1에선 섹터 1, 2, 3 최고기록을 p1~p3 찍은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르, 메르세데스의 발테리 보타스, RBR의 베르스타펜이 사이좋게 한 섹터씩 나누어 들고 갔습니다. Q2 진출 컷은 p1 +1.399. 

Q2에선 본격적인 RBR 베르스타펜 vs 메르세데스 해밀튼 분위기. Q2 첫 시도부터 베르스타펜 빨랐고 - 1분 16초 483 - 해밀튼이 1분 16초 499로 바짝 뒤쫓습니다. 0.016초 차, 둘 다 Q2 첫 기록은 미디움으로. Q1에서 두 번 돌았는데도 +0.480이었던 걸 감안하면 Q2 해밀튼 상당히 위협적이었죠. Q2 2차 시도에서 해밀튼이 +0.016을 -0.009로 뒤집으면서 1분 16초 474를 기록, p1. 맥라렌의 란도 노리스가 p10으로 턱걸이 Q3 진출에 성공했는데 기록이 p1 +0.999(!)로 꽤 재미있었습니다. p11 베텔은 +1.272. 

Q3에선 다섯 팀 열 드라이버의 경쟁 겸 팀 플레이가 시작부터 흥미로웠어요. 그리드 페널티 있는 드라이버가 팀메이트 끌어주기를 한다거나. Q3 첫 시도는 메르세데스의 보타스가 리드합니다. 팀메이트인 해밀튼보다 0.145초 앞섰고 RBR의 베르스타펜보다는 0.350초 앞섰는데, 연습주행 내내 RBR 우위 이어진 걸 감안하면 메르세데스의 이 페이스는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Q3 두 번째 시도에서도 끌어주기 없이 보타스가 좋은 기록을 내며 예상 외의 메르세데스 첫 줄이 멕시코에서 이루어집니다. 턴10-11 즈음에서 알파타우리의 츠노다 유키가 실수, RBR의 페레스와 베르스타펜도 영향을 받으면서 베르스타펜의 두 번째 시도가 꼬인 걸 고려하면 토요일에만큼은 메르세데스에게 운이 더 따랐었는지도요. 폴 포지션은 보타스에게. 겸사겸사 판지오 상도 받아갑니다. 

 

레이스 

 

하스 드라이버들이 p13, p14 스타트였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페널티 풍년이었나를 짐작 가능한 레벨... :) 어쨌거나 메르세데스에게 맨 앞줄을 내주었다 해도 둘째줄은 RBR 차지입니다. 리어 윙 균열 문제로 베르스타펜 p3이었다지만 서킷 특성상 p2보다 p3 쪽이 더 스타트에 유리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는 예상대로 흘러갔네요. 어떤 면에선 몬차랑 비슷하게 멕시코 이곳도 스타트 직후 첫 코너가 중요한데, 폴 시터인 메르세데스의 보타스 상대로 슬립스트림 이용해 따라잡아 바깥쪽에서 들어간 RBR의 베르스타펜이 곧바로 레이스 리더로 올라갔지요. 게다가 보타스가 맥라렌의 다니엘 리카도하고 첫 랩에서 부딪히기까지 한데다, 첫 랩 사건사고로 세이프티 카까지 출동했네요. 스타트 자체는 메르세데스 둘 다 나쁘지 않았지만 베르스타펜의 턴1 공격이 좋았고 보타스에게 운이 안 따르기도 했던 것 같아요. 페레스는 첫 랩 대환장쇼를 적절한 코스아웃으로(?) 밭 갈며 피했고요. 그나저나 스타트에서 알핀의 오콘이 최소 두 대를 보내버렸는데 어떻게 당사자는 안 날아가고 끝까지 달렸다는 것이... ^_ㅠ 

L4/71 SC 해제, 첫 랩에서 둘 퇴근한 뒤로 하스의 니키타 마제핀과 알핀의 알론소가 자리싸움 하는 걸 다 보았습니다(그나저나 앞쪽에서는 리스타트 신경전 굉장했던 모양). L5/71 저 뒤쪽에선 맥라렌의 노리스 - 아스톤 마틴의 스트롤 자리싸움도 벌어졌고요. p14/71 상황에서 이미 p1-2 갭이 5초대로 벌어지면서 사실상 무난한 RBR 레이스가 되어 갈 분위기였습니다. 보타스가 리카도 뒤에 오래 잡혀 있으면서 메르세데스 입장에서는 더 까다로운 레이스가 된 것 같았고요. 다들 1스톱 갈 분위기였는지 버티기 모드가 상당했고 - 레이스 절반도 가기 전인 L27/71 상황에서 p3 페레스 - p4 가슬리 사이가 14초대 이상으로 벌어지는 등 이렇다 할 만한 휠투휠 배틀 없이 그대로 쭉 이어질 것 같은 모양으로 흘러갔습니다. 핏스톱 머리싸움 정도가 그나마 볼 만한 경쟁이려나 싶었는데 이것도 깔끔하게 처리한 RBR 승. L42/71 보타스 핏스톱이 제대로 꼬이면서 11.7초, 메르세데스가 큰 손해를 보았어요. 타이밍 자체는 적절한 편이었다 해도 어떻게 그 상황에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 그리하여 L48/71쯤 되어서는 보타스는 또 리카도 뒤에 붙들리는, 이 주의 악연 같은 그림이 펼쳐지고 말았습니다. 

전날 메르세데스 프론트 로가 어떻게 가능했나 싶은 수준의 페이스 격차를 보이며 베르스타펜이 레이스를 리드하는 한편 p3 페레스를 상대로 한 p2 해밀튼의 버티기도 굉장했던 후반이었죠. L63/71 상황에선 p7 베텔부터 백마커. L65/71 보타스가 '플랜 F'를 시도합니다. 소프트 갈아신고 나왔지만 부족했는지 한 번 더L70/71엔 어떻게든 해내는군요. 멕시코 GP의 새 랩 레코드이기도. 체커드 플랙, 우승은 베르스타펜, 포디움은 베르스타펜, 해밀튼, 페레스. 이것으로 멕시코 GP 시점까지 올 시즌 유일한 원투피니시는 맥라렌뿐이라는 재미있는 기록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 

 

한 가지, 만약 첫 랩 턴1에서 보타스가 해밀튼 쪽 말고 베르스타펜 쪽(그러니까 바깥)을 막았다면 레이스 초-중반 흐름이 많이 바뀌었을까 하는 의문이 좀 있었어요. 온보드랑 다른 데이터들 다시 찬찬히 봐야 알겠지만, 리카도가 보타스하고 부딪힐 만큼 올라와 있었으니 보타스가 베르스타펜을 막았다면 베르스타펜-리카도 컨택이었을지. F1에 if란 의미 없습니다만, 소치였나에 이어 너무 쉽게 길 열어준 느낌 +1 이어서 좀 궁금하기도. 폴 시터가 첫 랩에서 리드 놓치면 아쉽잖아요(물론, 따낸 드라이버가 내 드라이버라면 얘긴 달라지겠지만요). 막판의 해밀튼 버티기그런 '만약에'들과 별개 같았습니다만은.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은 1포인트 차로 메르세데스의 리드. 이 1포인트가 보타스가 가져온 패스티스트 랩 포인트임을 감안하면(!) 동점 내지는 뒤집힐 수도 있었을 주말이란 뜻도 됩니다(RBR에서 괜히 팀 트로피 받으러 포디움 오를 사람으로 에이드리언 뉴이가 간 게 아닐 듯). 드라이버스 챔피언십 쪽은 베르스타펜이 해밀튼 상대로 14포인트 리드를 지킵니다. RBR 입장에서는 네 그랑프리를 남기고 2013시즌 이후 처음으로 다시 양대 타이틀에 도전하고 있고, 메르세데스 입장에서는 버티고 뒤집어내면 F1 역사에 남는 팀이 되는 상황이지요(컨스트럭터로 7연속 + 드라이버로는 해밀튼이 6연속 챔피언십 획득). 규정 변화 큰 시즌을 앞두고 있으니 RBR같은 입장이면 올해에 모든 걸 쏟아부을 만 하고, 그것 아니더라도 이 정도 격차라면 경쟁이 과열 안 되는 쪽이 더 이상할 상황입니다. 


그나저나 멕시코 GP 결과로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 3-4위 뒤집힌 것도 맥라렌 좋아하는 입장에서 좀 쓰라린데, 5-6위 경쟁 중인 알핀과 알파타우리는 무려 동점(!)을 기록하는 등 다른 팀들도 경쟁 치열합니다. 헝가로링 우승이 있어서 동점이라도 순위는 알핀이 위군요. 

 

올 시즌 남은 그랑프리는 이제 넷, 아마도 2010시즌 이후로 이렇게 막판까지 아슬아슬한 시즌은 거진 처음같은데 그게 - 그렇게 됐네요?! 드라마틱한 일들이 많았던 인터라고스, F1에선 처음 가는 곳이라 어떨지 모를 카타르 GP, 새로 지은(이 시점까지도 짓고 있는;) 서킷에서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 GP, 서킷 레이아웃 뜯어고친 아부다비 GP까지 정말로 예측불허 투성이인 시즌 끝자락입니다. 모쪼록 사고 없이 안전히 마무리되길 바라게 되네요. 그리고 그걸 다 지켜보고 있을 저에게도 FIA는 포인트 좀 줬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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