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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그랑프리 잡담/season 2022

2022시즌이 끝난 뒤, 2023시즌 시작을 앞두고

by p 2023. 3. 2.

F1의 2022시즌은 V6 터보 하이브리드 시대에 접어든 이후 아마도 가장 큰 기술규정 변화를 맞이한 해였습니다. 여느 해와 같이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일어날 일들은 일어났지만 그게 꼭 바라던 바와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었네요. 레드불 레이싱(이하 RBR)이 2013시즌 이후 처음으로 드라이버스 챔피언십과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 모두를 거머쥐는 동안 야스 마리나 2021도, 2021시즌 도입된 예산 제한 규정도 바닥깔개 아래로 밀어넣은 먼지처럼 묻혔습니다. 적어도 밀어넣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왜냐면 밀어넣었음을 기억하는 저같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저는 늦었지요. 시간, 그것도 소수점 아래 세 자리 - 천 분의 일 초 단위 - 를 다투는 "스포츠"를 두고 한 해가 끝나고서야 "잡담"을 시작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잡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무엇에 그칠 뿐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시즌 개막 주말을 앞두고 키보드를 두드려 지난 시즌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남겨두기를 선택한 건 순전히 저를 위해서가 맞습니다. 어떤 기억들은 글자로 적어 두는 편이 낫거든요. 기억하기에도 잊어버리기에도. 

스포츠가 그 고유의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해, 그 이전에 스포츠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2021시즌 야스 마리나가 제게 남긴 상처-비스무리는 생각보다 컸던 모양입니다. 저는 제 생각보다 더 탈것경주를 좋아했던 모양이에요. 투덜대면서도 그랑프리 주말을 비우고 중계들을 모두 챙겨 보기를 그만두지는 않았고 - 못 한 것일 수도 - 어쩌면 옳은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고, 머리카락 한 가닥만큼의 기대를 놓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any' does not mean 'all'" 도 받아들여지는 세상이지만 어쩌면 한 번쯤은 내가 바랐던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방향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큰 착각이었고 아무런 근거도 없는 생각일 뿐입니다만 그런 기대를 마음 한켠에는 품었던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지난 한 해는, 레이스는 체커드 플랙이 뜰 때까지가 맞고 결과지만 놓고 보면 내가 모르는 알맹이들을 남기기가 쉽다는 지론을 좀 더 굳히게 되는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물론 제 랩톱의 모터스포츠 폴더에는 지난해의 FIA 결정문들과 세션별 기록들을 정리해 둔 파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기는 합니다, 다른 해들과 마찬가지로 '2022' 이름이 붙은 폴더 안에). RBR과 RB18, 페라리와 F1-75, 메르세데스와 W13, 이른바 "톱 3" 팀들과 이들의 드라이버들 그리고 차들, 레이스 운영, 그 모든 것들을 둘러싼 많은 잡음과 소문들. 중하위권 팀들과 그 드라이버들을 두고 오가는 욕인지 "개인 의견"인지 모를 이야기들, 갑작스러운 은퇴 발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맞아들어가던 퍼즐, 땐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명확해지던 "소문"들, 트랙에서의 사고와 트랙 바깥에서의 언쟁, 안전 문제를 지적하고 항의한 드라이버에게 유독 가혹하던 페널티들. 한편으로는 유독 느슨한 판정의 도움을 받던 어떤 팀 내지는 드라이버(공공연한 수준으로), "정치적인" 것들로부터는 거리를 두겠다는 노력(?)이 결과적으로 다시 소수자들을 향한 압박으로 돌아가던, "아래"로 흐르던 미움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리드에 정렬하는 차들을 그 배기음을 들으면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까지도요. 

시간은 무척 희소한 자원이지요. 그 귀한 시간을(그리고 꽤 많은 돈까지)들여 F1을 보고 있는 만큼 매몰비용 측면에서 저는 직관이든 집관(?)이든 이것에 물러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는 엄밀한 의미에서 객관적이기 어렵고 이런 잡담들은 그걸 지향하지도 않아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의 더러움과 추잡함까지 없는 척 하지는 못하겠다,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새 시즌 개막을 앞둔 지금 저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는 평소 제 입버릇/말버릇은 그만큼 제가 많은 것들을 기대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하게 되더라도 기대를 놓지는 않으려고 해요. 어쩌면 올해는 좀 더 나은 것들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올해만큼은, 2022시즌 잡담은 시간 될 때 조금씩 정리해서 올리고 2023시즌 몫은 "제 때에"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나중에 제가 다시 돌아볼 때에 여기에 무엇이 지나갔었는지 정도는 남겨 두어 확인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아 참, 실버스톤 갔다 온 이야기도 따로 한 꼭지 두드려 보겠습니다.

블로그에서도 종종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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