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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그랑프리 잡담/season 2023

2023-05-07(-8) / Round 05: 마이애미 그랑프리 - 재보다 잿밥이라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어요

by p 2023. 5. 13.

현업이 바빠 며칠 늦게 정리하는 마이애미 2023 잡담입니다. 얼떨결에 찾아온 봄방학 이후 바쿠가 예상 외로 노잼이었던 마당에 또다시 찾아온 노잼 그랑프리라니 이게 다 뭐냐 싶으면서도. 그 노잼을 확인하게 되기까지 그 모든 시차를 견디며 모든 세션을 다 챙겨 본 저와 제 트위터 타임라인을 생각하게 되네요. 귀한 분들께 이런 누추한 그랑프리 주말을 제공해도 정말 괜찮은 것임? 우리들한테도 포인트 줘라. 

 

전년 대비 DRS 구간들을 100m 정도 줄인 건 바쿠 때와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RBR에서는 자기들 견제용이냐고 헬무트 마르코를 비롯한 "높으신 분들"라인에서 부정적으로 나왔죠, 그럴 만도 한 것이 이번 시즌 초반 RBR이 DRS 사용 시 얻는 이득이 추정 +20-30Km/h라는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의 속력을 더 얻으면 앞차는 버티기가 어렵긴커녕 사실상 안 된다고 봐야죠 그냥도 열리면 어려운데.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놀라울 정도로 추월이라 할 만한 게 없는 레이스가 되어 버렸으니 그건 그것대로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진지하게 2022 기술규정 개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만한 시점같지만, 글쎄요. 최근 몇 년간 F1과 FIA의 행태가 영 마뜩찮은 건 저뿐만은 아닐 테고. 

 

...네 아무튼, 기록지들과 함께 시작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리더보드 꼭대기에 메르세데스들이 자리하며 시작한 금요일입니다. 새 플로어를 비롯해 이런저런 업데이트를 가져온 페라리들도 RBR과의 격차를 좁히는 듯 싶었어요(적어도 금요일까지는). 세션 중 레드 플랙 영향으로 소화한 랩 수가 전반적으로 적은 편이기는 했네요. 하스의 니코 휠켄베르크가 세션 중반 즈음 턴2-3 구간에서 순간 그립 놓치고 벽에 부딪힌 바람에 15분 정도 레드 플랙 상태에서 시계가 돌아가서 12분 정도를 남기고 세션이 재개되었었습니다. 메르세데스들도 내내 미디움으로 돌리다 막판 소프트 한 번 시도에 리더보드 바닥권에서 한 번에 꼭대기로 올라가는 걸 보여 줬으나 금요일이므로 큰 의미는 없었다 생각합니다(하지만 러셀이 새 스티어링 테스트해봤단 얘기에 DAS mk2냐며 아무말 모드 스위치 켜며 설레어 한 사람들 있던 건 즐거운 함정).

 

서포트 레이스나 다른 이런저런 트랙 액티비티가 많지 않은 마이애미여서인지 세션 치르며 차들이 돌면서 트랙에 러버 깔려서 랩타임은 오후에 더 빠르게 당겨졌고요. 날이 더워서 트랙 온도도 빠르게 올랐습니다. 소프트들은 과열 문제 있었을 수 있단 이야기도 될 것 같아요. 남은 시간 10분대 언저리에서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르가 벽 들이받고 레드 플랙 소환, 4분여를 남겨 두고 세션 재개되어서 그래도 한 랩씩은 더 시도해 볼 만 했었네요. 큰 순위 변화는 없이 세션 마무리되었습니다. 직선 구간 기준 RBR의 막스 베르스타펜이 페라리의 까를로스 사인스 상대로 0.35초 가까이 더 이득 보았었다던가 한 걸로 봐선 확실한 RBR 우위 이어지는 것도 맞아 보였고요. DRS 구간 길이를 줄이거나 말거나. 

 

토요일 FP3는 어째 FP1, FP2보다도 느슨한 분위기였네요. 다시 RBR이 눈에 띄게 앞질러나가는 느낌 속에 세르히오 페레스 쪽의 페이스는 좀 덜해진 인상이었고, 일단 여기까지 봐서는 촘촘은 하되 비 오지 않는 한 이변 없이 RBR들이 맨 앞줄 - 이란 인상이었습니다만은 탈것경주는 체커드 플랙 뜰 때까지죠. 

퀄리파잉 세션: 맥라렌에게는 재앙끕 결과, 아스톤 마틴은 극과 극, 빨강 팀 드라이버가 부른 빨강 깃발이 결정하다시피 한 폴 포지션(....), 세꼭지별의 기쁨과 슬픔, 얼떨결에 둘째 줄까지 간 하스. <-이렇게 줄이면 뭔가 재밌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는 함정이 역시 마이애미였달까 그렇습니다. 메르세데스들은 토요일에 꽤 고생한 편이었는데, Q1 p19-20에서 p6, p11로 올라가는 걸 보여 준 것까진 그래도 괜찮았지만 Q2에서 p13으로 그 루이스 해밀튼이 Q3 진출에 실패하는 일이 다 벌어집니다. 조지 러셀은 p10으로 문 닫고 Q3 진출 성공. 아무래도 저 드라이버와 저 팀에 대해서는 기대치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최근 2-3년간 특히나 자주 하게 되네요. 

 

Q3 첫 시도들이 다들 좀 얼레벌레했던 바람에 마지막 시도를 기대했는데, 레드는 당연하고 옐로만 떠도 그리드 끝내주게 꼬이겠다-고 생각했던 게 그만 말이 씨앗이 된다고 그 비슷한 게 되어 버렸습니다? 페라리의 르클레르가 FP2 때와 같은 구간에서 크래시, 1분 36초 남기고 레드 플랙이 선언되면서 세션 재개 없이 그 시점 그대로 결과가 확정됩니다. 폴 포지션은 RBR의 페레스, 아스톤 마틴의 페르난도 알론소가 오랜만에 첫줄에서 출발(p2),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RBR의 베르스타펜이 p9로. 워낙 RBR 차들이 빨랐으니 언제쯤 p1까지 올라올까-가 얘깃거리가 되는 결과기는 했어요.

레이스 앞두고 마이애미의 토요일 밤에 큰 비가 오는 바람에 금요일 토요일 이틀에 걸쳐 트랙에 깔린 고무-비스무리들도 다 지워지다시피 하여 트랙 상태는 사실상 리셋된 상태로 일요일을 맞이했습니다. 정작 레이스 때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 사실 비라도 왔어야 재밌었을 레이스인데 - 피렐리의 2스톱 예측도 함께 날아가버리다시피 했네요. 레이스 전에 LL Cool J가 진행한 <운전자 여러분 소개>시간은 영 어색하고 (제가 보기엔)별로였습니다. 2017시즌이었나 오스틴 때 했던 게 차라리 낫지 않나 싶었을 정도. 미국만 가면 F1/리버티미디어가 북미 시장에 어떻게든 어필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느낌이 든단 말이에요 ... 가뜩이나 시차 때문에 저는 보기 괴로운데. 

 

L1/57 무난한 스타트, 다만 최후미에서는 맥라렌의 란도 노리스가 고생을 좀 했습니다. 오스카 피아스트리는 소프트 스타트한 보람이 있는 출발이었으나 소프트 스틴트를 너무 짧게 가져가서(L6/57 핏) - 아마 타이어 닳는 문제 때문이었지 싶습니다만 - 그 이득을 크게 보진 못한 느낌이에요. 상위권은 거의가 미디움 타이어로 스타트한 가운데 p9의 베르스타펜과 p13의 해밀튼은 하드였는데, 이들의 레이스 결과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처지는 차로도 어떻게든 저 결과를 이끌어 낸 해밀튼 쪽의 레이스 운영을 더 주목하게 됩니다. 후자는 이른바 "DRS 기차놀이"의 중간에 끼어서 손해 본 랩 수가 많았던 걸 감안하면 더요. 

 

SC가 큰 변수가 되긴 하지만 그게 뜨는 상황은 반갑지 않습니다(금방 수습이 안 되는 사고란 얘기기 때문에). 그래도 워낙 큰 변수다보니 가능한 한 핏스톱을 미루는 것처럼 보이는 팀과 드라이버들이 있었고 결과적으론 그게 어느 정도는 먹히기도 했어요. 하드에서 미디움으로 교체한 후 먼저 핏스톱 가져갔던 드라이버들을 착착 잡으며 순위를 올렸던 메르세데스의 해밀튼 같은 케이스가 그렇습니다. 앞으로 10초 이상 뒤로 7초 가까이 여유(?)가 생겼던 아스톤 마틴의 알론소는 중간에 중계 나오는 전광판 보고 팀메이트인 스트롤의 컨트롤을 팀라디오로 칭찬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레이싱" 이라기엔 참 뭣했던 레이스였다는 점이 유쾌하면서도 아쉽습니다. 어쨌거나 그 시간까지 깨어서 그걸 다 보고 있었던 건 저도 기대하는 바가 있었단 이야기기 때문에.

우승은 RBR의 베르스타펜, 포디움은 베르스타펜, 페레스, 알론소. 또 한 번 1-2 피니시를 가져가는 RBR입니다.

 

그나저나 한 랩 페이스에선 그나마 기록이라도 가까이 붙을 수 있는데, 레이스는 그 모양 그 꼴이 되는 건 더 가까운 레이싱 - 더 많은 추월을 약속한 "2022 기술규정 개정의 의도"가 박살났단 얘기라고 생각해요. \당장에 그 RBR로도 베르스타펜이 p9에서 p1까지 가는 데 15랩 가까이가 걸렸단 말이죠? DRS 범위에 아스톤 마틴의 알론소를 두고 내내 추월엔 성공하지 못하던 페라리의 사인스도 그렇고요. 하스의 마그누센 뒤에 37랩 가까이 걸려 있던 페라리의 르클레르는 어떻습니까(어째 다 예시가 페라리가 되었지만 그만큼 눈에 띄었단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페라리에도 이 마이애미 주말에 차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나 - 업데이트가 의도한 바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걸까 싶습니다 - 그래도 그 드라이버들이 그 차들을 타고 그렇게까지 오래 걸려 있을 것같진 않았단 말이지요. 세이프티 카는커녕 옐로 플랙 한 번조차 나오지 않았던 이 레이스에서, 바쿠 2023 정도까진 아니지만 정말이지 이렇다할 트랙에서의 자리싸움이 없었던 걸 보면 DRS 구간 길이를 줄인 게 RBR 주장마따나 RBR 견제용인지 아니면 RBR의 우위를 이어갈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해 주고 있는 건지를 모를 정도라고요. 차차 알게 될 것 같습니다만. 

 

챔피언십 경쟁은 드라이버/컨스트럭터 모두 RBR 1위가 아니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DSQ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하나 글쎄요죠(제다 2021로도 그 예산제한규정 위반으로도 안 나왔으니까). 다가오는 이몰라에는 대규모 업데이트를 가져올 팀들이 여럿 있을 텐데 상반기 판도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일지 궁금합니다. 아스톤 마틴은 올해에 집중해서 '대업' 성취를 목표로 할지, 아니면 빠르게 내년 모드로 자원을 돌릴지도 마찬가지고요. 맥라렌하고 알핀은 사이좋게 한 레이스씩을 번갈아가며 말아먹는 분위기라 흐름이 영 좋지 않아보입니다. 이쪽에도 전환점이 필요해 보이는데 - 이래저래 모두의 테스트베드인 까딸루냐(=스페인 GP 개최지)가 6월 첫주로 예년보다 한참 뒤에 자리잡은 게 고민거리겠네요. 기대치는 조정하고, 출처불명의 소문에는 주의해 가며 다음 GP 기다려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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