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1 그랑프리 잡담/season 2023

2023-05-28 / Round 07: 모나코 그랑프리 - 좋은 쪽으로도 그렇지 않은 쪽으로도 명불허전

by p 2023. 5. 31.

분명히 3연전의 두번째 주말이었어야 했을 모나코였지만 이탈리아 북부, 특히 에밀리아로마냐 쪽의 홍수로 인해 이몰라가 취소되면서 그냥 2연전의 첫 주말이 된 2023시즌의 모나코입니다. 이몰라에서 대규모 업데이트를 예정하고 있던 팀들이 꽤 있었죠, 하지만 이몰라가 그렇게 되었으니 이걸 한 주 더 미루느냐 아니면 테스팅용으로는 몹시 곤란한 트랙인 모나코로 가지고 오느냐에서 대부분의 팀들이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여기서? 이걸요? 같은 느낌이지만,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맞겠지 싶어요. 상반기 경쟁은 빡빡하고 까딸루냐까지 기다리기에는 1포인트가 더 급할 테니. 

 

그나저나 이런 오래된 서킷들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로, 중계에서 코너들을 숫자 대신 이름으로 불러버리는 때가 많은데 - 첫 코너라고 안 하고 생 드보에서 같은 식 - 모나코는 그게 너무 심한 곳이다보니 저도 종종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이름과 순서들은 대충 알지만 그래서 그게 몇 번 코너냐 묻는다면 순간 헷갈릴 때 있거든요. 그래서 레이스 앞두고 이렇게 (*아래 이미지 참조). 

메르세데스의 트랙 맵 + 시뮬레이션 자료에 저의 괴발개발한 손글씨를 곁들여서

 

여느 때처럼(?) 기록지들과 함께 시작합니다. 

 

아직까지는 당연한 듯이 RBR이 가장 앞서고 있죠. 하지만 숏 런 페이스만 봐서는 페라리도 만만찮았어요. 적어도 금요일까진 그랬습니다. 모나코기 때문에 0.1초도 크거든요(느린 코너가 많아서뿐만이 아니라, 실버스톤 같은 곳 한 바퀴가 6km 조금 모자란 길이인데 모나코는 4km가 한참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합시다) RBR 베르스타펜 사이드에서 셋업 헤매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지만 뭐 금요일이니까요. 전반적으로 무난한 편인 금요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의 F1에서는 차 자체가 크고 무거워지면서 확실히 '이런 종류의' 스트릿 서킷엔 어울리지 않는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포뮬러 e에서처럼 날렵하고 산뜻한 느낌이 없다 해야 하나. V8 막판 - 대충 2011-12시즌 정도 - 에만 해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단 말이지요? 그나저나 타이어가 생각보다 많이/빨리들 닳는 것 같았는데 C3 4 5를 골라서였는지 다른 뭔가가 더 있었는지 그것도 좀 궁금합니다. 금요일까진 롱 런 제대로 달린 팀도 없다시피했던 것 같지만. 

 

 

모나코는 토요일이죠. 퀄리파잉 세션의 중요성이 특히나 높은 GP다보니까. 그런데 FP3에서 메르세데스의 루이스 해밀튼이 차를 살짝 해먹으면서 - 프론트 윙 손상 + 서스펜션 교체 정도로 마무리된 게 천만다행이었다 봅니다, 드라이버가 빠르게 판단해 최대한 대미지를 줄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그 차를 치우느라고 간만에 재미있는 풍경이 나왔는데요. 모나코 특성상 트랙 주변이 워낙 좁다 보니까 차를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수습하는데 거의 6-7층 높이까지 갓 업데이트한 W14를 들어 옮기는 바람에 ... 온보드 카메라는 켜진 채로 .... 대체 얼마짜리 인형뽑기 게임(?)을 하는 기분인 걸까 싶을 정도로 무척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리고 모나코의 꽃 퀄리파잉 세션. 

Q1부터 혼돈 파괴 그리고 페레스가 자기 차를 파괴 ... 이렇게 스타팅그리드는 RBR 샌드위치 모양이 되는 한편, 그래서 폴 경쟁은 사실상 베르스타펜 르클레르 알론소 3파전이 되었습니다. Q1, Q2 내내 리더보드 순위 휙휙 갈리는 게 정말 레이스 때도 이렇게만 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그럴 리가 없죠 여긴 모나코인데. 탈락권에서 한 랩에 순위 올려내는 드라이버들이 속출하는 풍경도 즐거웠고요. 특히 Q3, 아스톤 마틴의 페르난도 알론소가 무시무시한 페이스를 보여주었지만 라스카스에서 그만 베르스타펜이 미세하게 앞서가면서 베르스타펜이 F1 커리어 첫 모나코 폴을 가져가고 알론소는 p2로 오랜만에 프론트 로 스타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네 주민(....사실 F1 드라이버들치고 모나코 안 살거나 안 살아본 드라이버거 더 드물겠지만, 이쪽은 국적도 국적이다보니)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르는 기록은 p3, 하지만 팀의 트랙 포지션 체크 실패 + 터널 구간에서 맥라렌의 란도 노리스 진로를 방해한 바람에 3그리드 페널티 확정. 이래저래 제일 아쉽게 된 쪽은 르클레르였겠습니다. 정말 모나코 징크스 끝내주는 드라이버... 젠슨 버튼의 실버스톤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거든요. 한편 알핀의 에스테반 오콘은 Q3 대성공! 르클레르 페널티에 힘입어 두번째줄 앞쪽이라는 좋은 자리를 가져가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레이스 75%는 본 느낌

첫 코너에서 누가 앞질러갈것인가가 최대 관건이었던 레이스... 일 뻔 했으나 의외로 생 드보에선 다들 보수적이었어요. 내내 거의 기차놀이 수준이었는데 - DRS 활성화 이후에도 상위권에선 추월이 거의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안 나왔다는 점에서 - 막판에 비가 오면서 급격하게 흥미로운 전개가 펼쳐졌습니다. 혹시 아직 안 보셨다면 스타트 이후 3랩 정도까지 보시고 대략 L50/78 언저리까지 빨리감기해 넘기셔도 될 것 같아요.

 

흐리다가 빗방울 얘기가 팀라디오에서 들리기 시작하고, 정말로 비가 오면서 속속 웻 타이어로 교체하는 드라이버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가운데 인터미디엇 타이밍에 알론소가 미디움을 선택하는 바람에 작게나마 남아 있던 우승 가능성이 날아갔지요(그 전 드라이 컨디션일 때에도 8초대 갭이었으니 쉽진 않았겠지만). 다음 랩에 다시 피트인해도 대충 포지션 유지가 되었다는 점이 너무나 모나코입니다. 좋은 자리에서 출발한 오콘은 버티기 대성공, 결국 포디움까지 갔고요. 가슬리 결과도 나쁘잖았으니 알핀으로서는 너무나 기쁜 결과였겠습니다. 

 

또다른 흥미로운 쪽은 맥라렌입니다. 두 드라이버 다 퀄리파잉 결과가 그다지였다 보니 최대한 버텨서 1스톱으로 끝내는 걸 각자 다른 타이어를 골라 시도해 보려 했던 것 같은데, 미디움으로 시작한 노리스 쪽이 하드 교체 후 좀 달리려던 차에 비가 오는 바람에 제대로 꼬일 뻔 했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인터미디엇 타이밍을 제대로 잡으면서 두 드라이버 모두 포인트피니시에 성공합니다(RBR하고 AM에서 하나씩 빠져 준 영향도 있겠지만서도;). 노리스는 예전에 슬릭으로 버티다 거의 다 잡은 우승 놓친 적도 있기 때문에(*소치 2021) 아마 그런 학습효과도 있었지 않을까요. 올해 루키인 오스카 피아스트리는 F1에서 치르는 첫 모나코치고는 매끄럽게 운영을 잘 한 편입니다. 유일한 DRS구간인 메인 스트레이트 - 그걸 스트레이트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만요 - 에서 추월 시도해서 성공한 것도 포함해서요. 

 

메르세데스도 마찬가지로 두 드라이버를 다른 타이어를 신겨 출발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나쁘잖은 편이었고, 사실 조지 러셀처럼 하드로 가는 쪽이 페이스 측면에선 더 나았을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 해밀튼이 이번에 패스티스트 랩 가져간 것도 하드 교체 후였습니다, 2위 3위 기록들은 미디움으로 나온 걸 감안하면 더 흥미로운 기록이기도 합니다 - 어쨌든 전반적인 전략은 나쁘지 않았어요. 문제는 핏스톱. 모나코에서 한 랩에 두 차를 불러들이면 두번째 차는 뒷바퀴에서 꼬인다는 징크스라도 있는 걸까요? 전에 보타스하고도 그렇더니 이번엔 러셀입니다. 그 밖에 러셀 개인의 실수로 포지션 놓친 것(그립 모자랄 상황이었으니 감안 가능하지만), 위험한 복귀라는 이유로 5초 페널티 나온 것(그러면 더블 옐로를 무시한 페레스는 왜 그냥 지나갔는지 모를 일입니다만) 때문에 아쉬움이 남긴 했네요.  

 

아스톤 마틴에서는 알론소는 포디움에 랜스 스트롤은 조기퇴근이라는 다소 당혹스러운 결과를 맞이합니다. 스트롤이 빗길에 약한 드라이버도 아닌데 이번 모나코에서는 유난히 핀볼 게임 수준으로 우당탕탕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하스는 이번이 팀 150GP째였다더니 개국공신격인 케빈 마그누센은 근사한 추월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스 제대로 꼬이면서 조기 퇴근(인터미디엇 타이밍을 놓친 게 컸습니다),니코 휠켄베르크도 첫 랩부터 사고 휘말리면서 여엉 아닌 레이스를 펼쳤고요. 풀 웻 끝내기 시도에 의의를 두기로 합니다. 

어쨌든 이번 모나코는 상위권 팀에서 골고루 하나씩 레이스를 말아먹으면서(?) 괴상한 균형이 갖춰진 레이스였습니다. 비가 온 탓이 컸겠지요? 여러 차례 이 블로그나 제 트위터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현재의 RBR 차량 성능 우위는 상반기 중에는 사실상 확정이고, 피렐리 타이어라는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에 따라 다르겠지만(실버스톤에서부터 새 타이어를 가져온다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올 시즌 쭉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의외인 쪽이 아스톤 마틴인데, AM은 지금 사실상 한 드라이버로 버티기 하는 수준으로 포인트를 모으고 있지요? 그래서인지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 순위에도 그게 반영이 되고 있고요(명백한 성능 차이에도 그걸 1포인트차로 따라붙은 메르세데스도 지독합니다). 한편 페라리는 차를 잘 뽑아도 운영에서 꼬일 수 있으면 경쟁에서 어디까지 처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듯한 모습이라 아쉽습니다. 존 엘칸도 왔던데 어쩌려고 그러는지. 알핀에서는 오콘이 정말정말 오랜만의 '모나코에서 포디움 간 프랑스 드라이버'가 되면서 겸사겸사 맥라렌을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 경쟁에서 앞서갑니다. 이것도 시즌 진행되면서 계속 엎치락뒤치락하게 될 것 같은데 어쩌다가 1위 경쟁도 아니고 중위권을 이렇게 들여다보게되었는지 안타까운 일이네요.

 

드라이버스 챔피언십은 (이것도 앞서 이야기했지만)페레스가 이번 모나코를 토요일에 말아먹는 바람에 베르스타펜이 안정적으로 리드합니다. 여기서도 변수는 알론소... 시즌 끝나봐야 알겠지만 알론소가 2위로 마무리하고 FIA 시상식 간다고 해도 놀랍지 않겠어요(적어도현 시점에서는요). 메르세데스 둘이 페라리보다 위에 있는 건 차를 잘 뽑아서도 드라이버들 때문이어서도 아닌 것 같지요. 포인트는 레이스에 걸려 있고 레이스는 체커드 플랙 받을 때까지임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순위입니다. 

모나코가 이렇게 마무리되었으니, 다음은 모두의 테스트베드(!) 까딸루냐 서킷에서 열리는 스페인 그랑프리입니다. 슾GP도 추월 어지간히 안 나오는 편이지만, 이번엔 상반기 팀 상태 체크 차원이 더 크니까 그럭저럭 볼 만 할지도요? 특히 마지막 코너 시케인을 마침내 지웠기 때문에 그게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가 저는 좀 궁급합니다. 그렇다고 추월이 휙휙 나오고 갑자기 차들의 성능 격차가 확 좁혀진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요. 적어도 모나코보다는 볼 만 하지 않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기다려보고 있는 백-투-백 탈것경주 주간. 트위터에서 뵙겠습니다!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