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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그랑프리 잡담/season 2021

2021-06-06 / Round 06: 아제르바이잔 그랑프리 - 타이어를 뜯는 땅

by p 2021. 8. 14.

일하다 눈이 살짝 맛이 가는 바람에 올해 아제르바이잔 GP는 챙겨 보기가 조금 까다로웠어요. 바쿠 앞두고 싱가포르 GP 취소 소문도 솔솔 퍼졌었군요. 어쨌거나 트위터가 됐든 어디에 뭐라도 적어 놓아야 나중에 기억으로 풀칠해 붙여 볼 조각들이 생기는구나 싶어요. 안 까먹으려면 이렇게 블로그 같은 데다가 따로 정리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만은. 

유로피안 그랑프리 이름으로 처음 F1 캘린더에 들어왔다가, 아제르바이잔 그랑프리로 이름 바꾸어 캘린더에 은근슬쩍 말뚝 박은(?) 이곳은, 시가지 서킷치고는 레이아웃도 쭉쭉 뻗은 편이라 굉장히 빨라요. 불의 땅에 자리한 바람의 도시라니 바쿠 별칭이 근사하지요. 빠르고 좁고 그래서 사고도 - 정확히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 많이 난다는 인상. 이곳에서 밋밋한 그랑프리가 열린 적은 아직까지 없는 것 같습니다. 

 

연습주행 첫 세션을 메르세데스가 비교적 가볍게 소화하는 경향이 있다고는 해도 - 올해는 덜합니다만 - RBR 베르스타펜 p1, 페라리 p2-3에 비해 메르세데스가 p7, p10에 이름 올린 것은 다소 낯섭니다. FP2에선 RBR p1-2 vs 메르세데스 p11, p16으로 기록차 더 벌어졌던 것도 흥미롭습니다. 연습주행에서 알파타우리들이 소프트 타이어를 신었다고는 하나 거의 날아다니는 듯한 기록을 낸 반면 메르세데스에서는 보타스가 문제점 호소를 할 정도였어요. 연습주행 세션들에서부터 엔진 문제 나오질 않나(윌리엄스의 니콜라스 라티피), 레드 플랙에 VSC에 별별 일이 다 있었는데 - 일요일이 워낙 굉장했던 나머지 그만 저도 적당히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토요일 한 줄 요약: 바쿠의 턴15는 차를 물어요. 


Q1에서부터 레드 플랙이 뜨질 않나, Q2는 Q2답게 어지러웠고, ... 아니 이렇게 정리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퀄리파잉 세션에서만 레드 플랙이 네 차례 떴어요. 사고 난 드라이버들을 리스트업해보면 아스톤 마틴의 랜스 스트롤, 알파 로메오의 안토니오 지오비나치(이상 Q1), 맥라렌의 다니엘 리카도(Q2), 알파타우리의 츠노다 유키 그리고 페라리의 까를로스 사인스(이상 Q3). 2016시즌 헝가리 GP 퀄리파잉 세션 이후로 이렇게 엉망진창인 적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어쩐지.

Q3에서 추가 웜 업 랩 넣고 트랙 포지션 이득에 슬립스트림까지 붙여도 메르세데스는 좀 힘겨워 보였습니다. RBR에서 베르스타펜을 페레스 앞에 보낸 게 다소 의외였고, 해밀튼 기록 갈아찍기가 가능할까 약간의 기대를 하고 있었으나 레드 플랙 엔딩. RBR 피트월도 /머리짚 모드였던 건 재미있었네요. 빨강 팀 드라이버의 백 투 백 레드플랙으로 폴 상황이어서 더요. 어쩜 빨강과의 인연이 이렇게까지... :Q 

 

토요일에 사건사고가 많았던 만큼, 일요일의 레이스를 앞두고서는 평소보다 더 안전운전을 기원하게 되었습니다.

 

바쿠치고 레이스 스타트는 깔끔하게 이루어진 편이었지만 중위권이 좀 흔들렸다고 보았습니다(그래도 올 시즌 다른 그랑프리들에 비하면 무난한 수준). 소프트 타이어로 시작한 드라이버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피트인해서인지, 이번에도 아스톤 마틴의 핏스톱 전략 돋보였고요. 그러나 그만 꿋꿋이 버티면서 영웅주행 중이던 스트롤이 타이어 펑처로 L31/51에서 세이프티 카를 소환하고 맙니다. SC가 떴지만 위치 때문에 아무도 그 틈에 타이어를 갈아끼우고 나올 수 없는 흥미진진한 풍경... 그 시점에 레드 플랙 선언되어도 그러려니 했었을 것 같은데요. L36/51 리스타트 후의 제바스티안 베텔은 과연 명불허전. 4회 월드 챔피언 아무나 하는 것 아니지요. 한편, L41/51 베르스타펜은 저렇게까지 밟을 필요가 있나 싶게 밟고 있었고 - L46/51 대략 다섯 랩 남기고 왼쪽 뒤 타이어가 메인 스트레이트에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L47/51 SC 소환, 이대로라면 베텔이 아스톤 마틴 이직 후 첫 포디움 피니시를 할 것 같은 상황에 - L48/51 죄다 타이어 교체를 위해 핏 - 한 사이 레드 플랙이 선언됩니다. 레이스가 재개된다면 완전 한 랩 싸움이나 다름없어진 상황. 롤링 스타트로 갈 줄 알았는데 스탠딩 스타트로 결정되고 - 보신 분들은 다 보셨을 바로 그 순간. 첫 코너에서 이 레이스의 결과가 (사실상) 결정되었죠. 체커드 플랙, RBR의 세르히오 페레스가 우승, 아스톤 마틴의 베텔이 2위, 알파타우리의 피에르 가슬리가 3위로 포디움에 올랐습니다. 문단 나누지 않고 이렇게 줄줄이 적어 놓으면 별 것 아닌 두 시간 남짓같아 보이지만 그 혼란상이란 정말이지 온갖 종류의 총체적 난국.... 

 

사건사고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덮였지만, 전반적으로는 모나코에 이어 바쿠에서도 어째 세꼭지별 계열 파워유닛 쓰는 팀들이 헤맨 그랑프리였어요. 지난 시즌 보여주었던 메르세데스의 퍼포먼스가 워낙 굉장했기 때문에, 조금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여도 호들갑 떠는 사람들이 늘게 마련입니다(게다가 올해 RBR-혼다 진영이 또 굉장히 차를 잘 만들어 오기도 했고요). 이 즈음부터 RBR의 RB16B가 메르세데스의 W12보다 성능 우위에 있다는 느낌이 확실해졌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여요. 그 와중에 1위 다툼 중인 두 집 퍼스트 드라이버들이 둘 다 포인트 피니시를 못 했다는 것도 굉장하고요(좀처럼 없을 일입니다). 메르세데스 입장에선 악몽같은 주말이었겠군요. 

 

드라이버 챔피언십은 4포인트 차 지속, 그러나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에서 26포인트 차로 RBR이 바짝 앞서갑니다. 올해 챔피언십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겠습니다. 지나고 나면 남는 건 기록이라지만, 그 과정의 뿜김들도 누군가는 기억하니까요. 설마하니 상반기에 이번 바쿠같은 혼란상이 또 벌어지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즌 첫 3연전인 폴 리카르 + 레드불 링(x2) 를 기다렸었는데 그만 .... 네 제가 이걸 두드리는 시점은 2021년 8월 14일 0시 41분이니까요. -_-;; 그 사이에 있던 일들도 차차 정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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