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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그랑프리 잡담/season 2021

2021-05-23 / Round 05: 모나코 그랑프리 - 때와 장소와 시간

by p 2021. 8. 13.

분명 올 시즌에는 제때제때 두드리기로 했던 것 같은데, 일이 바빠서 취미를 잠시 우선순위에서 밀어 둔 사이 F1 여름 휴식기 - 말하자면 '여름 방학' - 가 왔고 그제사 밀린 탈것경주 잡담들을 두드립니다. 살짝씩 시일이 지난 뒤에 다시 보니 새로운 부분들도 있네요. 그럼 모나코 그랑프리부터 시작할게요. 

 

모나코 앞두고 몇 가지 발표가 있었습니다. 먼저 올 시즌 캘린더 세부 변경. 트리플헤더(3연전) 4회라는 기가 막힌 스케줄이 되어 버렸어요. R7-8-9, R12-13-14, R15-16-17, R18-19-20(!)이 붙는 일정이고 저 12-14, 15-17 그리고 18-20 사이가 한 주씩 건너여서 사실상 하반기는 레이스가 줄줄이 계속 이어지다시피하는 수준입니다. 과연 역병 시국에 정상 진행이 가능할지 의문이에요. 이 잡담을 두드리는 시점엔 R16 싱가포르 GP(마리나 베이)와 R21 오스트레일리아 GP(알버트 파크)가 캘린더에서 빠졌고, R17 일본 GP(스즈카) 개최 여부도 불확실해서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R17 자리에 터키 GP가 다시 들어간다는 풍문도 있지만 그 때 가 봐야 알 것 같아요. 

보다 예측 가능한, 놀랍지 않은(!) 소식으로는 란도 노리스의 맥라렌 계약 연장이 있었습니다. '다년 계약'이라는데, 이것으로 2022시즌 어쩌면 그 이후까지도 다니엘 리카도 + 란도 노리스 조합은 이어지겠어요. 내년 시트들이 여름방학 전에 확정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8월 13일 금요일 밤 11시가 가까워 오는 지금까지도 시트 상황은 혼란스럽습니다. 발테리 보타스와 알렉스 알본은 각각 최소 넷에서 최대 여섯 팀이랑 계약한 느낌. 

아무튼, 모나코입니다. 온갖 예외 투성이지요. 금요일 건너뛰고, 목요일에 연습주행 두 세션 몰아 하고 토요일 일요일 일정으로 열리는 일정부터가 그래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일요일엔 기차놀이가 벌어지기 십상이어서 토요일 퀄리파잉 세션이 무척 중요한 곳이기도 하고요. 역병 시국 때문에 작년엔 쉬었으니 2년만에 찾는 셈입니다. 마을 주민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몬테카를로의 길바닥이라지만, 아랫시리즈부터 많이들 달려 보았을 테니 드라이버들에겐 익숙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나봅니다. 카지노로 유명한 동네이기도 해서 그런지 운이 상당 부분을 좌우하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이 점은 아랫시리즈의 마카오도 그렇네요).

 

오랫동안 탈것경주 꾸준히 열렸던 서킷들이 그렇듯 이곳의 코너들도 번호보다 제각기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편입니다. 턴15-16 구간 라 피신느(=스위밍 풀) 라든지. 그렇다 보니 엔지니어가 번호로 알려 주는 걸 듣고 드라이버가 오히려 헷갈려하는 진풍경이 나오기도 합니다. 

 

목요일 연습주행 결과들을 보면서는 주말 날씨가 쭉 좋고 별 일 없다면 Q3에서 1분 10초대 초반이나 그보다 좋은 기록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 정도의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비슷한 결과가 나왔으니 저도 탈것경주 본 시간이 헛되진 않은 셈. :P 

한편, 다니엘 리카도는 얼핏 레이트 브레이커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코너에서 차를 던지는(...) 타입이어서인지 이직 후 아직까지도 좀 헤매는 느낌입니다. 빨리 스타일 잡아야 될 텐데 쉽지만은 않은가봐요. 드라이버들에게 스타일 있듯이 차 개발방향도 집집마다 특성이 있는 편이어서. 연습주행 페이스만 보면 퀄리파잉 세션에 큰 기대는 어려운 상황이어서 레이스에서 극단적인 타이어 관리를 바탕으로(=존버....) 뭔가 시도해 보는 편이 낫지 싶었는데, 사실 이런 경우엔 선택지의 폭 자체가 넓지 않죠. 우승, 포디움, 포인트 피니시, 패스티스트 랩을 통한 추가 포인트 같은 것들을 따지다 보면 종종 잊는데 레이스 완주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기록이랍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테스트 제한이 많아 서킷 경험 쌓기 어려운 때에는 더 그렇고요. 


FP3 세션 막판에 차를 해먹는 바람에 하스의 믹 슈마허는 퀄리파잉 세션에 불참했습니다. 뭐라도 해 보았지만 스타팅그리드 뒷쪽으로 가는 것과, 해 보지도 못하고 뒤로 가는 건 완전 다른 이야기기 때문에 이럴 때 아쉬워요. 윌리엄스는 좀 힘들어보였고, 메르세데스 - 특히 루이스 해밀튼 - 이 생각외로 Q1 첫 시도부터 느려서(팀메이트 발테리 보타스보다 0.5+초 가량 뒤진 상황) 페라리에겐 천우신조의 기회였습니다. 이변이라면 알핀의 페르난도 알론소가 p17으로 Q2 진출에 실패한 것이었는데요. Q2 진출 컷이 Q1 p1 기록 +1.140초였는데, 알론소가 모나코에서 그렇게까지 뒷그리드였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던 걸 보면 실제 기록보다는 저의 개인적인 충격이 더 컸다는 이미지. 

 

모나코 퀄리파잉의 핵심은 '실수 안 하기'죠. Q2에서 페라리 드라이버들 모두 준수한 기록 내는 가운데 RBR의 막스 베르스타펜이 첫 시도에서 1분 10초 650, 섹터 1-2 퍼플로 앞서나갔어요. 모나코이므로 Q2 미디움 이런 여유 부릴 것 없이 소프트 탈탈 털어서라도 어떻게든 앞자리 차지하는 게 중요한데, 첫 시도에서는 베르스타펜, 페라리의 까를로스 사인스, 샤를 르클레르까지만 1분 10초대를 기록합니다. Q3 컷은 Q2 p1 +0.812. 

Q3에서도 메르세데스는 메르세데스답지 않게 헤맨다는 느낌이었고, RBR - 이라기보다는 베르스타펜 - 이 빠르지만 페라리가 변수로 작용하는 가운데 르클레르가 좋은 기록 내고 난 후에 크래시, 레드 플랙을 소환하며 폴 포지션을 확정합니다. 한 번 더 시도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남은 시간이 짧았거든요. 섹터 1 퍼플 찍고 있던 베르스타펜에겐 아쉽게 된 셈. 

 

 

모두가 기대해 온(?) 페라리의 왕자님과 RBR의 에이스가 모나코 맨 앞줄에서 스타트하게 생겨서 다들 두근두근 대환장쇼를 예상했으나, 반전: 르클레르 DNS 확정. 그 Q3 크래시 때 차에 문제가 생겼던 걸 스타팅그리드 정렬하기 직전까지 발견 못 했던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는데, 홈 그랑프리 참 어렵습니다. 

 

스타트에서 베르스타펜이 메르세데스의 보타스 상대로 아슬아슬하게 리드를 지키면서 앞서 나갑니다. 실질적 폴인데도 상당히 과격하게 출발했는데, 그게 일단 초반에 보타스를 앞서가는 데 한 몫 한 것 같더라고요. 모나코에서 추월을 하려면 사실상 뒷차 운전자가 앞차 운전자가 실수하게끔 만드는 수밖엔 없다고 생각하는데, 올해 아스톤 마틴을 탄 베텔은 확실한 포인트권까지는 몰라도 모나코에서 누군가의 순위권 길막은 하고도 넘칠 만큼 경험 많은 좋은 드라이버여서 뺑뺑이 지옥이 열렸습니다. L23/78 즈음엔 슬슬 레이스 리더가 백마커를 만나게 될 정도. 

추월이 워낙 까다롭다보니 웬만하면 버틸 만도 한데, 역시나 지옥의 눈치게임이 열렸죠. 핏스톱 때 손해 보는 시간을 감안하면 (비 같은 변수가 없을 경우) 1스톱 외 다른 옵션을 생각해보기 어려운 모나코여서 더 그렇고요. L30/78에서 해밀튼이 핏합니다만 순위 확보 대 실패. 바로 이전 그랑프리에서 환상적인 전략적 판단을 보여 준 그 팀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열렸습니다. 휠 넛 문제로 핏스톱이 꼬여서 보타스가 p12로 복귀하게 되면서 메르세데스 입장에선 대재앙 개막. 사고는 없는데 사고가 많았습니다... 반대로 아스톤 마틴은 훌륭한 판단으로 드라이버들 순위를 지켜냅니다. 핏스톱 난장으로 자리바꿈 된 것 외에 사실상 레이스 도중 추월로 자리 바뀐 건 없다시피한 상태로 L49/78 까지 이어지고 L68/78에서 해밀튼이 두 번째 핏스톱을 가져가면서 패스티스트 랩을 노렸습니다. 당장 찍어야 하는 건 아님... 같은 팀라디오가 오가는 와중에도 정말 찍은 그 드라이버. L77/78까지도 멀쩡한 추월 한 번이 없다시피했으니, 오랜만에 모나코를 보는 고통을 느꼈군요. 체커드 플랙. 우승은 RBR의 베르스타펜. 2위는 페라리의 사인스, 3위는 맥라렌의 노리스. 5위의 베텔과 7위의 해밀튼에 주목하고 싶은 결과이기도 합니다(특히 베텔). 

 


지난 스페인 GP 잡담 끝부분에서 이야기했듯 '모나코 토요일의 한 뼘 차이에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 정도'의 차이가 이어지나 했더니, 생각보다 RBR이 더 강해져 나타났어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베르스타펜이 이 모나코 우승에 힘입어 챔피언십을 작은 차이로 앞서가기 시작합니다. 

 

 

시즌 초반부터 그렇긴 했지만, 이 즈음부터 RBR의 차량 퍼포먼스가 더 확연하게 앞서나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프랑스 GP에서 시작되는 혼다 파워 유닛 봉인 해제(?)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매 그랑프리마다 업데이트를 가져오는 수준으로 팩토리를 갈아넣은 RBR의 시즌 초반 우위 밀어붙이기가 돋보여요. 2013시즌 이후 처음으로(!)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 리드를 가져가게 되었다는데 그럴 만 하더라고요. 밀튼 케인스야 늘 섀시 잘 짜 오는 집이긴 하지만, 내년에 대규모 규정 변화가 있는 만큼 올해 챔피언십을 기필코 가져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느껴요.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메르세데스가 아니지요? (1위 경쟁을 하기엔 거리가 있다 한들)다른 팀들도 그 두 집을 보고만 있지 않을 건 마찬가지고요. 아무래도 올해는 오랜만에 아주 치열한, 그리고 여러 면에서 피곤하게 지지고 볶는 일이 이어질 시즌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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