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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그랑프리 잡담/season 2020

2020-08-30 / Round 07: 벨기에 그랑프리 - 소문난 집이기는 하나

by p 2020. 9. 1.

그러니까 여기가 거기.

재미있는 그랑프리 주말이 될 거라고 예상했던 2020 벨기에 그랑프리는 의외로 심심하게 끝났습니다. 서킷 자체야 명불허전, 재미있는 곳입니다만 - 첫 코너인 라 수르스 지나 오 루즈/래디옹 올라 케멜 스트레이트로 접어들기까지, 그 언덕을 풀 스로틀로 오르는 차를 실제로 보면 몇 번이고 반하게 되죠 - 중계로 보는 재미는 또 별개니까요. 토요일까지는 그럭저럭 좋았는데 어째서 일요일엔 그렇게 (벨기에치고)밋밋하게 지나갔는지. 기록지부터 보고 시작합니다.  

 

스파프랑코샹(이하 '스파') 서킷의 특성상 파워 유닛 출력이 좌우하는 비중이 큰 동시에, 낮은 다운포스 셋업을 가져가되 그렇다고 몬차처럼 극단적인 로 다운포스 셋업을 가져가기엔 또 곤란한 구간(섹터 2가 그렇죠, 복합 코너가 많아서)이 섞여 있어서 연습주행 첫 세션은 대개 셋업 잡기에 쓰이는 편입니다. 로 다운포스 셋업을 시각적으로 상징하다시피 하는 게 바짝 눕힌 리어 윙일 텐데, 메르세데스들은 다른 팀 대비 플랩 각도를 별로 낮추지 않아서 빗길 대비라도 하는 걸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파워 유닛 출력에 자신이 있어서 그만큼 드래그가 생기든지 말든지 리어 윙은 그렇게 가도 된다고 생각했거나, 드래그 생긴 만큼을 다른 에어로다이나믹 요소들로 어떻게든 된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지요. 셋업을 윙만 가지고 잡는 건 아니기도 하고요. 당연한 이야깁니다만. 

 

개인 일정상 FP1 중계는 보지 못했고 라이브타이밍 앱과 트위터 타임라인으로만 체크했어요. 하스의 마그누센은 엔진 교체, 그로쟝도 기계적 문제로 제대로 세션을 치르지 못한 가운데 페라리 파워유닛을 쓰는 팀들 - 페라리, 알파 로메오, 하스 - 이 초반부터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면 르노 계열은 업데이트 성공했는지 희망의 노르스름한 빛 한 줄기가... 그렇다고 메르세데스 계열을 본격적으로 따라잡을 만큼은 아니었던 게 아쉽지만요. 혼다 파워유닛을 쓰는 팀들도 (지난 몇 년간 맥라렌을 갈아넣었던 보람이 있는지)제법 괜찮은 퍼포먼스를 보여 준 편입니다. 기록 차이로 봐서는 메르세데스가 전력질주하지는 않았다는 의심이 들지만요. 생각보다 빠르게 기록이 당겨지지는 않았던 세션이기도 하네요. 

 

FP1-2 사이에 살짝 비가 오면서, 어디는 비가 오고 어디는 맑개 갠다거나, 아예 트랙 전체에 와장창 비가 퍼붓는다거나 하는 "스파 날씨" 를 잠깐 기대했는데 트랙 온도를 낮추는 것 이상으로 큰 비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타이어 컴파운드 세 가지가 모두 등장한 데서 볼 수 있듯이 이것저것 테스트해 보면서 페이스 잡아 가는 세션이었고요. 르노 계열의 희망의 빛이 몇 럭스 정도 강해지는 한편, 페라리는 윌리엄스와 리더보드 저 아래에서 페이스를 겨루는 상황이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실상 페라리 B팀 취급을 받는 알파 로메오가 페라리보다 리더보드 위에 이름을 올리지를 않나, 베텔이 2018시즌에 페라리를 타고 스파 트랙 레코드를 세웠고, 2019시즌 스파 우승자가 르클레르였는데 말이지요. 다음 주가 몬차인데 님들 괜찮냐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 와중에 메르세데스들은 여전히 살살 달린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섹터 2에서만 다른 드라이버 대비 약 0.4에서 1.8초까지 우위를 가져간 해밀튼이 리더보드에선 3위였으니까요.

 

금요일을 통째로 날릴 줄 알았던 하스는 어떻게든 두 드라이버를 트랙에 내보내는 데 성공합니다. 기록은 바닥이어도 나온 게 어딥니까. 마일리지는 소중한 것. 르노의 다니엘 리카도가 첫 세션에 이어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습니다만 리더보드에 p2 찍어놓고 케멜 스트레이트 한가운데 주차를 하는 바람에 버추얼 세이프티 카(VSC)를 소환하기도. 직선주로 중간에 녹듯이 퍼지는 모습을 온보드로 보니 정말 뭐가 문제냐 ... 싶기도 했답니다. 파워 유닛 문제라면 맥라렌도 안심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_- (그리고 이 불길한 예감이 일요일 레이스 직전에 그만 실현되고 말았고요) 

 

토요일도 기온 14도, 트랙 온도 18.7도로 선선한 날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구름이 두텁고 사이사이는 맑은 가운데 습도 78.2%로 혹시 비 오나...! 비 올 건가...! 하는 기대를 주긴 했지만, 글쎄요 과연. 페라리는 FP1, 2에 이은 부진이 더 심각해져서 이대로라면 Q2 진출도 불투명한 것 아니냐는 불길한 기운을 풍겼고... 르노가 확실히 시즌 초반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입니다. "스파 날씨"비슷한 풍경이 펼쳐지는 바람에 세션 초중반이 매우 조용하기도 했고요. 막판에 착착 기록 쌓이는 걸 보면서 중위권 싸움이 꽤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나마 긍정적인 예상 외에는 딱히 특별할 것 없이 FP3 종료. 

 

퀄리파잉 세션은 두 질문으로도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1) 업데이트가 실패할 수 있다 해도 이렇게까지 망할 수 있나? 2) 리소스 풍부하기로는 페라리만한 팀도 드물 텐데 이렇게까지 작년과 올해 퍼포먼스 차이가 날 수가 있나? 

 

아웃랩이 오래 걸리는 스파 특성상 (그리고 트래픽을 감안해서) 각 파트 남은 시간 3분쯤이 되면 다들 뛰쳐나오는 패턴은 반복되었는데요. Q1에서 Q2 진출을 놓고 페라리를(특히 베텔을) 그렇게 초조하게 봐야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두 대 모두 Q2에 가긴 했지만 페이스가 윌리엄스에 필적했다는 건 분명 큰 문제죠. 스카이스포츠의 앤서니 데이비슨이 르클레르 19시즌/베텔 이번 온보드를 비교하며 케멜 스트레이트에서 파워 유닛 출력 딸리는 부분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걸 보면서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이것을 지난 시즌 페라리 파워 유닛 치팅 논란과 겹쳐 생각해 보면 더 그렇습니다). 그 외의 흥미로운 점이었다면 비도 안 오는데 레이싱 포인트들의 페이스가 영 전만 못했다는 부분입니다. 르노들이 그만큼 올라왔기 때문도 크겠지요. 메르세데스들은 퀄리파잉 세션 접어들자 슬슬이고 뭐고 없이 기록을 깎아들어가기 시작했는데, Q3 첫 시도에 랩 레코드를 갈아 찍고(1분 41초 451) 그 기록을 다시 깎는(1분 41초 252) 해밀튼의 기록깎기 장인 모드는 몇 년을 지켜봐도 여전히 놀랍습니다. 맥라렌의 란도 노리스는 조금 아쉬웠네요. 더 깎아낼 여지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p1 +1.405로 세션 마무리, p10.  

 

레이스 당일 날씨는 레이스 스타트 때쯤 소나기 확률 20%, 레이스 끝날 즈음 비 올 확률 40%. 이 정도면 레이스는 드라이 컨디션으로 치르게 되고, 다 끝나면 비 철철 오겠구나 싶은 것이 F1 보는 사람들의 예상(....그리고 적중했다고 합니다). 피트레인 열리고 인스톨레이션 랩 돌던 와중에 맥라렌의 까를로스 사인스에게 엔진 문제가 생겨 사인스는 그대로 다시 개러지로 들어와 시작도 전에 리타이어합니다(정확힌 DNS죠 이런 경우엔). 배기 계통 문제였다는데 레이스가 끝나도록 아직 정확한 이야기는 없네요. 르노 파워유닛의 문제였는지. 

 

타이어 선택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해밀튼, 보타스, 베르스타펜까지 미디움 - 그 뒤로 10번 그리도 노리스까지 소프트 - 11번 크비앗 미디움, 12번 가슬리 하드(!), 13번 르클레르 소프트 - 나머지 다시 미디움. 첫 랩에 어디까지 올라올지 기대되는 13번 그리드였죠.

 

스타트는 대체로 좋았습니다. 라 수르스를 웬일로 다들 무난하게 빠져나갔고 - 첫 랩 대박은 예상대로(?) 르클레르. 리카도와 베르스타펜의 포지션 싸움이 재미있었습니다. 두 드라이버의 사이드 바이 사이드는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었네요. 라 수르스 에이펙스 직전에서 살짝 멈칫하는 바람에 노리스가 포지션 잃은 정도가 아쉬웠고요. 전반적으로 알파타우리, 특히 가슬리가 매우 빨라서 다음 주도 기대해 볼 만 하지 싶어요. 

 

해밀튼의 섹터 2는 따로 설명이 필요한 수준이었어요. L5/44에서 그 구간만 놓고 봐도 보타스보다 0.6초 가까이 빨랐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그 날은 해밀튼의 리드를 따라잡아 추월할 만한 드라이버가 없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p3-p4 인터벌도 채 10랩이 지나기 전에 6초 이상으로 벌어져 버렸고 - 기대할 만한 건 가슬리의 추월 쇼 정도 아닌가, 싶은 와중에 L11/44에서 알파 로메오의 지오비나치와 윌리엄스의 러셀이 크래시하면서(지오비나치 스핀하고 방호벽 들이받음 + 한쪽 타이어가 날아가서 러셀을 침 + 러셀이 방호벽을 들이받고 둘 다 리타이어;) SC 소환. 꽤 큰 사고였는데 다행히 드라이버들은 무사했습니다. 트랙에 데브리가 어마어마하게 흩뿌려졌는데도 레드 플랙 선언 없이 세이프티 카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드라이버들이 모두 첫 핏스톱을 가져가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페라리에서 르클레르의 타이어를 미처 준비하지 못하는 바람에 핏스톱에 10초가 넘는 시간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안 되는 집에서 별 게 다 안 되는 상황.... 

 

SC 해제 후 리스타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밀튼의 팀라디오로 "Loss of power" 가 나오는 바람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었으나 별 것 아니었던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남은 레이스는 포디움 권 순위 변동 없이 이어졌네요. 벨기에 치고 이렇게 무난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밋밋한 레이스 ........ 예외라면 1)이상한 페라리와 2)안정적인 르노였는데, 돌이켜보면 르노 엔진 쓰는 팀 중 한 드라이버가 DNS 떴으니 2에서처럼 '안정적'이라 말하기는 다소 어폐가 있었는지도요.  

 

와중에 해밀튼의 타이어 타령(....)이 나왔기에 저쪽은 무난히 피니시하겠구나, 싶었습니다(*이게 없었던 실버스톤에선 펑처 겪었다는 게 뿜김 포인트). 맥라렌의 노리스는 스트롤 뒤에 너무 오래 붙잡혀 있었던 바람에 순위를 파격적으로 올리지는 못하고 7위로 레이스를 마무리했습니다. Last lap Lando! 를 외쳤지만 그게 꼭 먹히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막판에 메르세데스급으로 페이스를 올리며 따라잡는 모습은 보기 좋았네요. 리카도는 패스티스트 랩을 찍고, 란도는 앞차를 바짝 따라잡고 있고, 그러니까 지금 딱 다섯 랩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체커드 플랙은 그런 마음 따위 고려 없이 휘날립니다. 포디움 피니시 조합은 올 시즌 들어 쭉 보고 있다시피한 해밀튼, 보타스, 베르스타펜. 메르세데스에서는 컨스트럭터스 트로피를 받을 사람으로 해밀튼 쪽 미캐닉인 샘 브래들리를 올려보냈군요.  

 

사실상 드라이버 챔피언십은 해밀튼 -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은 메르세데스로 굳혀진 레이스였다고 생각해요. 까딸루냐와 스파 양쪽에서 이 정도 퍼포먼스를 보인다면 어느 서킷에 누굴 태운 차를 올려도 무난히 포인트를 벌어 올 것 같습니다. 다음 GP가 몬차인 만큼 더욱 극단적인 로 다운포스 셋업을 가지고들 올 텐데, 안정된 코너 처리를 위해서 뭘 챙겨올지도 기대되는 한편 르노의 내기 - 리카도가 올 시즌 포디움 가면 팀 프린시펄인 시릴 아비테불이 리카도가 지정한 위치에 지정한 도안의 타투 하기 - 결과도 몹시 궁금합니다. 페라리의 부진이 심각한 수준인지라 이어지는 이탈리아 3연전(몬차, 무젤로, 이몰라) 분위기가 어떨지 모르겠네요. 무젤로에서는 이 역병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소규모 인원으로 관중을 받아 볼 생각인 것 같은데 제발 별 탈 없기만을 바라게 됩니다.;; 역시 건강과 안전이 최고. 

 

맥라렌 컨챔 3위 탈환. 중요하니까 크게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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