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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그랑프리 잡담/season 2020

2020-10-26 / Round 12: 포르투갈 그랑프리 - 돌이켜 생각해 보면

by p 2020. 10. 28.

가끔은 정리하기 어려운 그랑프리도 있습니다. 보는 그 동안은 즐겁게 보고, 트위터나 오프라인에서 수다도 떨고,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막상 정리하려 보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이 막막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레이스 잡담을 적어 두려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은, 지나간 이야기들을 갈무리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두드리는 게 더 어렵구나 - 싶기도 합니다. 요새는 유난히 그런 현재진행형의 고민들이 있어요. 가을 타나 봅니다. 지각에 대한 변명이 길었군요. :P 

 

북반구의 가을은 한쪽에만 몰려 올 리가 없으니 이쪽 끝이 가을이면 저쪽 끝도 마찬가집니다. 포르투갈 GP가 열리는 알가르브 서킷, 동네 이름 따서 그냥 '포르티망'이라고들 부르는 것 같은데요, 여기도 가을답게 제법 쌀쌀한 트랙 컨디션. F1에서는 처음 찾는 곳인 모양인데 트랙 고저차도 상당하고, 코너들도 블라인드 코너가 곳곳에 있어 온보드 화면을 보면 롤러코스터 탄 느낌도 듭니다.


연습주행 두 번째 세션에서는 피렐리의 2021시즌 타이어 테스트를 겸해 컴파운드 비공개 상태로 - 드라이버도  팀도 뭘 신었는지 모른다는 얘기 - 세션을 진행했던 모양입니다. 일정상 나중에 기록지만 체크했는데, 상당히 재밌는 결과가 나왔더라고요. 그래도 연습주행 내내 메르세데스의 발테리 보타스가 가장 좋은 페이스를 보여 주었습니다. 올 시즌이 여러모로 예외 상황이긴 하지만, 낯설거나 처음 가는 트랙에 빠르게 적응하기로는 보타스만한 드라이버도 잘 없어 보여요. 

 

그러나 스타팅 그리드를 정하는 건 토요일 오후의 퀄리파잉 세션 결과지요. 보타스는 Q2까지 좋은 기록을 냈지만 Q3에서 0.102초 차로 p2를 기록, 폴 포지션은 메르세데스의 루이스 해밀튼이 가져갑니다. 이렇게 올 시즌 모든 그랑프리에서 메르세데스 폴이 이어지는 와중 - 만약 이대로 쭉 가능하다면 또다른 기록이 되겠지요 - 보타스에게는 챔피언십 격차를 줄일 좋은 기회를 놓친 셈이라 아쉽게 되었습니다. F1 데뷔 시즌부터 지금까지 모든 시즌에 최소 1회 이상의 폴 포지션 기록을 낸 해밀튼이니만큼 숏 런의 강자임은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으나, Q3 체커드 플랙을 4분쯤 남기고 미디움 타이어로 트랙에 나와 끝끝내 기록을 깎아내는 모습 대단했습니다. 체커드 플랙 3초 전까지 보타스가 프로비저널 폴이었는데요.... 아 참, 레드불 레이싱도 소프트 타이어 신고 나오는 Q2에서 페라리는 무슨 생각으로 미디움을 신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스타트 전, 타이어 상황을 잠깐 볼까요. top 10에선 해밀튼, 보타스, 르클레르(p4) 이 셋만 미디움. 나머지 모두 소프트. 저 뒤에서 p19 마그누센이 하드를 끼고 있고 p11부터의 나머지들 모두 미디움. 메인에서 턴1 방향으로 제법 강한 바람이 불어 가뜩이나 내리막인 그 구간을 더 재미있게 만든 모양이었습니다. 

스타트에서는 해밀튼 > 보타스, RBR의 베르스타펜과 레이싱 포인트의 페레스가 부딪혀서 잠시 옐로, 그러나 L2/66부터 맥라렌의 까를로스 사인스가 레이스를 리드하면서(!) L4/66엔 메르세데스들을 1초 이상 앞서나갔답니다. 맥라렌 팀 팬으로서 이런 풍경은 아마도 2014년 이후 처음같아서 굉장히 기쁘면서도 우습고 슬픈 ...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는데요. 이렇게 L6/66까지 사인스가 리드하며 제법 괜찮은 페이스를 보인 데 반해 란도 노리스는 레이스 페이스가 여엉 싶게 처지고, 이후에는 L18/66쯤 레이싱포인트의 스트롤과 턴1에서 부딪히면서 비교적 이른 핏스톱 가져가기 + 프론트 윙 교체로 포지션 손해를 많이 보았습니다. 

 

알본은 처지는데 가슬리가 빠른 것도 요 몇 GP에서 자주 보이는 모습이죠. 보타스가 눈에 띄게 페이스가 떨어지거나 하지 않았는데도 상위권 인터벌이 저 세상 간격이 되어 버린 건 그냥 해밀튼이 빨라서 생긴 문제같았지만요. L41/66에서 해밀튼 핏, 그쯤 남았으면 소프트 신길 법도 한데 하드를 신겨 내보내는 메르세데스 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타스 쪽은 소프트 신고 싶었던 모양인데 팀 입장에서는 남은 랩 수가 애매해 소프트로 가면 막판에 3위 또는 그 밑으로 순위가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생각했는지 같은 하드로 교체하더군요. 추월하고 싶은 드라이버의 입장도, 안정적인 원 투 피니시를 가져오길 바랄 팀의 입장도 여러모로 이해는 가는 상황입니다. 만약 남은 랩 수가 다섯 랩만 적었어도 도박하는 셈치고 소프트 가도 되었겠으나 그 시점엔 애매했겠지요.  

 


르노에서 사실상 0스톱급의 굉장한 타이어 전략을 선보인 가운데 메르세데스는 L58/66에서 p6쯤부터 백마커로 만들어 버리는 질주를 이어가, 체커드 플랙 받고 무사히 레이스를 끝냅니다. 루이스 해밀튼 통산 92승째. 결국 하는군요, 월드 레코드. 포디움에는 메르세데스에서 쭉 함께 일해 온 레이스 엔지니어 피터 "보노" 보닝턴이 함께 올라갔고요. 2위는 보타스, 3위는 RBR의 베르스타펜. 올 시즌에 여섯 번이나 본 조합이라고 합니다. 

 

메르세데스의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 우승은 사실상 확정으로 보여요. 시즌 중 업데이트를 내년을 위한 준비로 돌린 지 한참 되었다는데 그래도 우위가 줄지를 않는 느낌입니다(차가 좋은지, 드라이버들이 대단한지, 둘 다인지; 아마도 둘 다 쪽의 가능성이 높다 봅니다만은). 3-4-5위 격차가 촘촘해서 이쪽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 같고요. 아, 2스톱하고도 5위를 가져간 레이싱 포인트도 주목할 만 하죠. 전략 담당자 Bernadette "Bernie" Collins 님 아무래도 천재가 분명.... 

 

어찌저찌 올 시즌도 여기까지 왔네요. 역병 시국.... 저는 정말로 역병이 싫습니다. =_= 이제 남은 그랑프리는 다섯입니다. 이탈리아 3부작(?)을 마무리할 - 그것도 이몰라에서 열릴 - 에밀리아 로마냐 GP, 터키 GP(이스탄불 파크), 바레인 GP 두 가지(사키르, 사키르 바깥쪽) 그리고 시즌 파이널의 아부다비 GP(야스 마리나). 부디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잘 치러지기를 바랍니다. 

 

이미지는 맥라렌 팀 트위터 계정(@McLarenF1)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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